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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로컬벤처의 힘···폐조선소·군사해변 수십만명 찾는 '힙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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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르포] 양양 서피비치·속초 칠성조선소·강릉 위크엔더스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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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 서피비치 입구 모습 /사진=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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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한국 아니야. 그냥 외국이야"

강원도 양양은 최근 몇 년 새 여름철 '힙플'(힙플레이스)가 됐다. 그 중심에 서피비치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이름없던 해변에 매년 70만~80만명이 몰려든다. 관광객뿐 아니라 전세계 유명 브랜드들도 자기들 광고판을 놓기 위해 줄을 섰다. 속초 청초호 옆에 자리잡은 칠성조선소도 마찬가지다. 주말마다 연인과 가족 등 4000명 이상이 방문한다. 오래된 여인숙을 개조한 강릉 위크엔더스는 20~30대들 사이에서 '힐링' 여행지로 입소문을 탔다. 지역 인구보다 수십배 많은 사람들이 매년 이 곳들을 찾는다.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장소를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 것은 지역 창업가들이다. 잘 키운 로컬벤처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군사제한구역에서 이국적인 '힙플레이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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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 서피비치 입구 모습 /사진=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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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일 찾은 서피비치는 여름맞이가 한창이었다. 초여름의 파도를 타는 서퍼들, 이국적인 해변을 찾아온 가족들, 패션 화보 촬영에 한창인 모델들까지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해변 곳곳에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로고도 눈에 띄었다. 식음료 바·라운지에는 '코로나', '모엣샹동' 주류를 팔고, 스케이트보드파크에는 볼컴 로고가 붙어있었다.

박준규 라온 서피비치 대표(사진)는 "식음료·자동차·패션 분야 등 28개 브랜드와 제휴를 맺고 있다"며 "광고판, 프로모션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수익을 만들고, 그만큼 방문객들의 이용하는 가격은 낮춰 '바가지 요금'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서피비치는 원래는 이름 없던 해변이었다. 2015년 박 대표 등이 40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양양 하조대 근처 군사제한구역의 공유수면점유 사용허가를 얻어 시작했다. 전체 1㎞에 달하는 해변 중 300m를 사용 중이다. 허가를 얻는 일부 해변을 제외한 양옆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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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사용지역을 늘려 추가 공간을 확보, 요가원을 지을 예정이다. 해돋이·해넘이를 보면서 체험하는 요가 강습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임팩트 투자사인 소풍벤처스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벤처투자를 받았다. 푸드트럭 등 식음료(F&B) 분야 청년 창업가도 선발해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청년들은 좋은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서피비치는 방문객들한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윈-윈'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파라솔, 튜브 등 획일적인 여름 해변에서 벗어난 새로운 즐길거리가 있는 해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3대째 이어온 칠성조선소, 청초호 대표 관광지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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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칠성조선소 전경 /사진=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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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의 끝에 자리한 칠성조선소. 문을 열기 전인 이른 아침부터 마음급한 방문객들이 서성거렸다. 오전 11시 문을 열자 출근하는 배 목수들 마냥 서둘러 조선소로 들어왔다. 입구 옆 작은 전시관에서 만난 가족들은 아이 손을 잡고 배 설계 도면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청초호 물밑까지 길게 연결된 선박 인양 철로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배 목수와 수리공들이 떠난 조선소의 자리를 관광객들이 채웠다.

청초호 주변에는 6.25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의 터전이 있었다. 칠성조선소도 그 중 하나다. 초대 창립자 최칠봉 씨가 함경남도 원산에서 피난을 내려와 처음 문을 연 1952년부터 3대째 이어 2017년까지 65년간 운영했다. 탁 트인 3300㎡(약 1000평)에 달하는 조선소 부지는 전성기 때 규모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조선소의 역사를 고스란히 손자 부부인 최윤성·백은정 와이크래프트보츠 대표(사진)가 이어받았다. 배를 만들고 수리·해체하던 공간을 전시관으로 개조하고, 나무를 제련하던 야외 공간을 어린이 놀이시설(플레이스케이프)로 바꿨다. 숙소는 북살롱으로,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은 카페로 꾸몄다. 실제 건조된 소형 고기잡이배나 배 인양을 위한 크레인 등 기존 조선소 시설은 그대로 보존했다. 잊혀졌던 조선소는 주말이면 평균 3000~4000명, 연간 40만명이 방문하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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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성(오른쪽)·백은정 와이크래프트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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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조선소 카페 한 켠에는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기가 놓여 있다. 여기서 볶은 원두로 칠성조선소 블랜딩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일부는 강원 지역 내 다른 카페들에도 공급 중이다. 코로나19(COVID-19) 상황이 나아지면 영화 상영이나 음악회, 페스티벌도 진행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어온 조선소라는 의미 있는 공간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성과를 거두게 됐다"며 "청초호와 속초 지역에 뿌리를 둔 문화 콘텐츠와 상품들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힐링' 여행지 된 여인숙 '위크엔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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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위크엔더스 입구 /사진=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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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더스'는 50년 된 낡은 여인숙을 수리한 호스텔이다. 강릉역 근처 여인숙들이 즐비한 골목 입구에 있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파란 문과 하얀 외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릉을 찾는 20~30대 여행자들은 뭔가 색다른 경험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여느 숙박업소와 다른 점은 겉모습뿐이 아니었다.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강릉의 바다와 자연을 활용한 '리트릿(retreat)' 체험 프로그램이 유명했다. 투숙객들이 바쁜 도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고안한 일종의 '패키지' 서비스다. 1박2일로 머물면서 강릉 숲에서 명상을 하고, 바닷가에서 서핑과 요가를 한다. 식사 때는 함께 모여 강릉 지역 음식을 먹는다. 조식에 제공되는 두부 스프레드는 강릉 초당두부를 활용해 직접 개발했다. 한 번 맛 본 사람들이 사고 싶다고 해서 올해는 별도 상품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위크엔더스에서 만난 염승식·한귀리 위크엔더스 공동대표는 강릉 사람들이 아니었다. 염 대표는 서울 홍대 유명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와 '전인권 밴드'의 기타리스트, 한 대표는 잘 나가는 방송국 PD였다. 이들은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서핑을 즐기다가 2년 전 아예 정착했다.염 대표는 "그동안 여러 여행지에서 겪었던 경험을 녹여 공간과 리트릿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주말마다 바다에 오고 싶어하는 도시인들을 위한 힐링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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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리(왼쪽)·염승식 위크엔더스 공동대표 /사진=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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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콘텐츠 장착한 로컬벤처가 지역경제 활성화 "

서피비치나 칠성조선소, 위크엔더스 같은 창업가들은 산업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 '로컬벤처'로 성장성을 주목받고 있다. 서울 창업기업들의 경쟁력은 첨단 기술이나 대도시에 맞는 혁신 서비스라면, 로컬벤처는 관광·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 혁신 콘텐츠가 경쟁력이 될 수 있어서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지역 창업가들은 개인사업자에서 출발해 점차 지역 사회와 산업을 혁신하는 로컬벤처로 거듭나고 있다"며 "유명 관광지를 운영하는 개인에 그치지 않고 확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투자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해 말 소풍벤처스와 손잡고 강원 지역 로컬벤처 등에 투자하는 32억원 규모 '임팩트 로컬 투자조합(펀드)'을 결성했다. 강원 지역 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와 규제자유특구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지난달부터 서피비치 등 강원 지역에 로컬벤처들에 투자를 집행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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