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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특파원 칼럼]플로이드의 죽음, 그 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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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현충일이었던 지난해 5월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46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20달러 위조지폐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던 중 숨졌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경찰에 의한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 중 하나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대 목격자 다르넬라 프레이저가 인터넷에 올린 휴대폰 동영상이 미국을 뒤흔들었다. 몸통 뒤쪽으로 수갑이 채워진 플로이드는 땅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의 무릎에 목이 8분46초 동안 눌려 있었다(쇼빈 재판 과정에서 이보다 긴 9분29초로 확인됐다).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고 20차례 넘게 호소했지만 그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쇼빈의 무릎은 풀리지 않았다.

경향신문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비무장 상태의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눌려 게거품을 물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에 번졌다. 2020년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불타올랐던 흑인 민권 운동 이후 최대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였다. 시위 참가자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과 히스패닉, 아시아인 등 모든 인종을 망라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모든 대륙에서 각종 차별과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동조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가 추구한 대의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플로이드 사망 1주기를 앞둔 미국은 평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30개 이상의 주들이 경찰 개혁을 위한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법집행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 사용 요건을 강화하고, 훈련을 강화하며, 시민들의 감시와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들이다.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쇼빈은 지난달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유죄가 인정돼 최대 징역 40년형에 직면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킨 다음 높은 철조망을 치고 대중의 접근을 봉쇄했던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은 이달 초 부분 개방됐다.

불만도 여전하다. 연방 의회 차원의 경찰 개혁 법안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흑인들이 경찰 폭력에 죽어나가고 있다. 각 주별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투표를 전보다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 추진되는 등 반동적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시안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폭증한 것을 계기로 인종 정의를 둘러싼 전선도 확대됐다.

그럼에도 플로이드의 죽음과 이어진 시위는 미국 사회에 깊이 박힌 인종주의의 뿌리를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인종주의가 만연한 미국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미국의 두 얼굴이 모두 드러났다. 지난 6월 워싱턴 시위 현장에서 만난 50대 백인 남성은 “백인 경찰관이 무방비 상태인 흑인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이는 장면을 보는 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끔찍한 진실의 모습이 미국인의 양심을 움직인 것이다.

미국 사회에 남은 과제는 ‘망각’과의 싸움으로 보인다. 플로이드의 죽음에서 멀어질수록 인종주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변화를 위한 동력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주의의 잔뿌리를 건드리는 데 그칠지, 원뿌리를 뒤흔드는 단초가 될 것인지가 달린 싸움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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