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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대선주자들, DJ로부터 다수파 전략 리더십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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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 펴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장신기 사료연구담당관

한 1년쯤 됐다. 장신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사료연구담당관으로부터 ‘DJ의 활동과 현대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6월 1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장신기 박사는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 책 제목의 ‘성공한 대통령’을 강조했다. 아래에 붙어 있는 부제는 ‘김대중 재평가’다.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로 ‘실패한’, ‘무능’ 같은 단어가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어요. 난 그게 정치혐오 역사비평의 귀결이라고 봅니다. 다른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도매금처럼 묻어가는 면이 있는데 집권기 DJ의 성과를 하나하나 보면 모두 대단한 업적이거든요. 남북관계뿐 아니라 베트남, 일본과 관계개선도 있죠. 동아시아 질서에서 영향력 확대에서 ‘한류’라는 문화적 측면이 어마어마한데 그것도 DJ 때였거든요.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베트남 파병과 정반대의 측면에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파병도 김대중 집권기에 결정됩니다. 50년 넘게 금기사항이었던 제주 4·3 문제해결의 물꼬를 튼 것도 그렇고…. 하나하나 업적을 두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100명 중 99명은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올 겁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중에 그런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경향신문

6월 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 현대사> 펴낸 장신기 박사.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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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회적 발전에 대한 김대중의 기여, 그 가치가 아직 다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듯합니다. 앞으로 평가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계기가 있을까요.

“알 수 없죠. 남북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지형에 큰 변화가 생긴다면, 대통령마다 기여한 바는 있겠지만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6·15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기여가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니까요. 남북관계가 잘 풀려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게 되고 정책대로 발전하면 그 부분은 평가될 것이고요. 나머지 여러 업적은 그 영역 내에서 꾸준히 평가되고 재발견되면서 다시 평가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0권짜리 <김대중 전집>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전집에 실리지 않은 메모·초고 같은 것 중에 앞으로도 발굴해야 하는 것이 있나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았는데, 전집에 수록되는 콘텐츠를 기준으로 쓰고 말한 것 중에서 완결된 텍스트에 한정했습니다. 일단 공개된 1974~1975년 일기는 다 포함했습니다. 대통령 퇴임한 후 일기 텍스트는 수록 안 했어요. 그러고 보니 아예 없지는 않지만 빠진 자료도 있네요.”

-이번에 낸 책에서 최초로 밝힌 사실관계는 무엇입니까.

“사실적 측면에서 보면 <대중경제론>이 어떻게 나오게 됐나 그 과정을 밝혀낸 일입니다. 보수 쪽에서 돌아간 김일영 교수나 진보 쪽 모두 DJ의 대중경제론은 민족경제론의 저자 박현채의 작품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김일영 교수는 1980~1990년대 DJ는 개방주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박정희 노선으로 투항했다고 봅니다. 진보적 시각으로는 배신한 거죠. 그래서 진보 입장에서는 결국 DJ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외세에 종속시켜 불평등을 강화시켰다는 논지를 펴죠. 제가 보기에는 둘다 잘못됐습니다. 김대중 연구가 체계화되기 전에 만들어진 착시효과라고 봅니다. 이분들이 동일하게 참조한 텍스트가 1971년 대중경제연구소가 펴낸 <대중경제 100문 100답>이라는 책인데, 이 책은 DJ뿐 아니라 박현채씨를 위시해 김경만 비서 등이 참여한 집단저작물입니다. 저간의 사정은 나중에 돌아가신 임동규씨의 증언을 통해 밝혀집니다. 박현채씨는 자립적 발전가능성을 모색하는 <민족경제론>의 저자로 유명한데, 사실 <대중경제론>은 박현채의 주장과 수출주도형 경제를 주장했던 박정희의 중간쯤 주장이고, 대외개방을 필요악으로 봅니다. 실제 1960년대 DJ가 쓴 글이나 국회 연설 등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경제론과 완전히 다릅니다. 외국자본과 시장개방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요.”

-책 후반부에 바이든과 부시의 일화가 언급됩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DJ를 실제로 존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 그리고 바이든과 짝을 맞춰야 하는 차기 정부가 이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워싱턴 정가에서 민주당 주요 리더들의 김대중에 대한 존경심은 아주 큽니다.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이것을 잘 활용했으면 합니다. 미국에서는 DJ를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하는데, 미국으로선 인종주의가 아픈 고리입니다. 만델라와 같은 흑인 인권지도자에 대한 존경표시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고 탈색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실제로 클린턴이나 고어 전 부통령,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존 케리 상원의원 같은 중요인사들이 1980년대부터 DJ와 한국 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국내 정치적 관점에서는 이런저런 평가가 있겠지만 해외에서는 그런 평가에 의해 좌우될 겁니다. 일본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고요.”

-한일관계에서 김대중은 반일민족주의를 이용하지 않았고, 민주주의와 평화 입장을 일관되게 보였다는 평가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일본 아베 정권 당시 수출규제와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요. 지난해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당당한 대한민국’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워딩도 떠오릅니다. DJ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가정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는 않았을 거예요. 일본은 한반도 관계를 푸는 데 있어 일이 되게는 아니더라도 안 풀리게 훼방을 놓을 수는 있거든요.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동북아시아 제1동맹은 미일동맹입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이지요. 북미회담과 관련해 공개된 회고록 등을 보면 일본이 어떻게 깽판을 놓는가가 생생하게 증언이 돼 있죠. 일본을 주요플레이어로 인식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필요할 텐데 과거사와 연동되는 바람에 이 관계가 방치돼버렸어요. 그게 제일 아쉬운 부분입니다.”

경향신문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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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결과적으로 평가한다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진영을 넘나든 YS(김영삼)의 길이 있을 것이고,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평생을 한 진영에서 정치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DJ의 길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정치인이니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YS는 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과정의 합리성을 훼손했다면 DJ 역시 결과를 중시했지만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는데, 본인이 중심이 돼 한 것이거든요. 자기세력을 끌고 투항한 것이 아니라 끌어들인 것이니까. 둘다 결과를 중시한 것은 당연한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민주당 주류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경향신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 / 시대의 창


-그렇게 보는 까닭은요.


“자기 정치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인내가 필요한 측면도 있고, 속에 없는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지금의 민주당뿐 아니라 정치권의 전반적인 태도를 보면, 코어 지지층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는, 대리하는, 이런 것을 참여민주주의로 오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DJ의 정치활동을 보면 1960년대 중반부터 한일협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했고, 광주민주화항쟁 해결에서도 사법적인 처벌에서 인적 처벌은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전혀 먹힐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물론 5·18의 경우 DJ 본인이 피해당사자이고 피해자들과 어떻게 보면 통할 수 있는 것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게 이해받기 쉽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 강경노선을 취했다면 김대중 본인도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민주화운동도 초토화됐을 것입니다. 중산층의 협조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요. 또한 김영삼과 재야사회운동도 분리됐을 것이고, 미국은 전두환이 생각하던 무늬만 내각제·간선제를 지지했을 겁니다. DJ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보면서 거기에 따라 전략을 고민하고, 그것을 구현해나갈 방법을 냉철하게 고민한 것이죠.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DJ의 노선이 항상 대중정서에 부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대중과 괴리돼선 안 되고 앞서나간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죠. 지금의 주요정치인, 대권주자 리더들을 보면 그 측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비전 제시가 아니라 대중들의 정서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위로 반복해 전달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원인은 정치를 쉽게 하려 한다는 것도 있을 것인데, 결국 본인의 철학에 기반을 둔 운신이 명확하지 않은 거죠. 결과적으로 참여민주주의를 곡해한다는 생각입니다. 의사결정과정이나 행정집행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인데, 그러한 민의에 기반을 둔 정치적 에너지를 가지고 집행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리더의 독립적인 역할이거든요.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대선에 나서려는 주자들은 이런 DJ의 리더십을 배워야 합니다.”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최대연합을 취하는 정치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집권 전인 1990년대 초반부터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는 끝났다며 ‘3김 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DJ를 배격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1997년 대선 직후 DJ는 ‘인기 있는 대통령보다 능력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대목에서 전율이 왔습니다. 집권 후 김대중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은 많이 흩어졌어요. 본인의 정치력을 그런 쪽으로 전환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소수 쪽이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대를 적대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수파 전략이죠. 현 정부는 다수파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수세에 몰려 있죠. 애당초 출발점이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 모든 정치는 다수파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혐오정치는 씨앗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필요합니다. 거기에서 김대중은 철저하게 성공했어요. 지금의 정치권이 배워야 할 자세이고,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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