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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냄비·팬 두드렸다가 주검으로 돌아와” 죽음 일상된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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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쿠데타 이후 군부의 폭압 통치가 이어지는 미얀마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39세 남성은 군부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군부에 끌려갔고 주검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가 어떤 이유로 끌려가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현지매체 미얀마나우는 9일 사가잉 지역 칼레이에서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민 민이 보안군의 심문을 받다가 고문 끝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가잉 지역은 사냥용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들과 군부의 전투가 종종 벌어지는 지역으로 지금껏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구금 중 고문끝에 사망한 사람은 민 민이 처음이다.

경향신문

미얀마 군부에 끌려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민 민의 장례식이 지난달 27일 사가잉 지역 칼레이에서 열렸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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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민은 지난달 24일 보안군에 끌려갔다. 아침부터 군경 50명이 민 민의 집에 찾아와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민 민의 가족 중 한 명은 “그들은 민 민의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가 단지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곧 석방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민 민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척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내가 고문을 당했는지를 묻자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곧 석방될테니 걱정말라”는 당부도 했다.

다음날 아침 민 민의 아내는 남편이 입을 옷과 음식을 준비해 군 초소에 갔다. 그러나 아내가 귀가한 지 약 1시간만에 보안군은 민 민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들은 민 민이 “폐에 문제가 있다”고만 설명했다. 민 민은 당뇨 합병증을 앓았지만 폐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신을 가지고 가족들이 군 초소를 방문했을 때, 군 장교 한 명은 민 민의 죽음에 사과하고 보상금으로 50만짯(약 34만원)을 줬다. 가족 중 한 명은 미얀마나우에 “화가 났지만 그들이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봐 화를 낼 수 없었다. 고개만 끄덕이고 나왔다”고 했다. 시신 곳곳에서는 멍이 발견됐다. 이마와 가슴, 목 뒤쪽부터 발목까지 멍이 들어 있었다.

가족들은 민 민이 왜 잡혀가야 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민 민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지지자이긴 했지만 당원은 아니었고, 거리 행진 등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쿠데타에 반대하는 의미로 한 일은 매일 밤 8시에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미얀마에서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리는 것은 악귀를 쫓아내는 의미로, 군부 쿠데타 초기부터 다양한 시민들이 이 활동에 참여해 왔다.

소극적인 저항 활동에 대해 목숨으로 값을 치른 셈이다. 민 민의 주변인들은 보안군이 사람을 헷갈렸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저항하는 시민들을 색출한다며 군부가 주민들을 이간질한 것이 원인이 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민 민의 친구는 미얀마나우에 “제보자를 의심하고 있다. 그는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며 “이 도시에서 유명한 군부의 정보원이 이웃 중에 있다”고 했다. 지난 3월에도 민씨의 이웃 중 한 명은 그에게 ‘냄비 두드리기’를 그만둘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웃은 소음이 계속되면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쿠데타가 발생한지 4달이 넘어가면서 이유 없는 죽음도 늘고 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는 8일까지 최소 857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민 민처럼 구금 중 고문으로 사망한 사람도 21명에 달한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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