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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성희롱 신고했더니 "프로젝트서 빠져라"…갑질 8%는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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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머니투데이

/삽화=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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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사의 지속적인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회사에 신고한 직장인 A씨. 피해자는 A씨였지만 정작 A씨는 주요업무에서 배제됐다. 상사의 지속적인 '보복성 괴롭힘'도 견뎌야 했다. 퇴근시간 후 사무실에 있던 A씨를 불러 '일도 없는데 왜 사무실에 남아있냐'고 캐물었고, 사회성이 없고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폭언도 다른 직원들 앞에서 들어야 했다.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집단 따돌림 등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어렵다고 토로한다. 수습사원이나 계약직 노동자 등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엔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주지 않거나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갑질 제보 중 8%는 성범죄…피해자에 면박, 프로젝트 배제

14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1~5월 이메일을 통해 접수된 직장갑질 제보 가운데 성범죄 사례는 7.8%였다. 지난 3년간 4.8%를 차지하던 것에서 1.6배가량 비중이 높아졌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성추행이 대부분이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직장인 B씨는 올 초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부서장에게 보고했다. 부서장은 바쁜 시기인데 그냥 넘어가자고 회유했으나 B씨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서장은 대표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가해자는 대기발령을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가해자의 업무공백으로 업무상 부담이 생기자 부서장은 B씨에게 야근을 시키고 면박을 줬고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며 비하하더니 프로젝트에서 아예 배제시켰다.

가해자가 인사나 연봉결정 등에 권한이 있는 경우 피해사실을 말하긴 더욱 어렵다. 수습기간이었던 C씨는 2차 회식으로 갔던 노래방에서 상사로부터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당하고 허리를 더듬다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

C씨는 문제제기를 통해 상사의 사과를 받아냈지만 상사가 다른 직원들에게 본인이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C씨는 "2차 가해가 두려워 신고하기가 겁이 난다"고 털어놨다.

로펌 대표변호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해 신고한 후배 변호사 D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이은의 변호사는 "법조계 등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변호사들의 단체 채팅방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모욕과 음모론 제기 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D씨는 실무수습과정을 마치고 일하던 중 대표변호사로부터 10차례 넘는 성폭력을 당해 지난해 12월 피의자를 고소했다. 피소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인 지난달 26일 피의자는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됐다.

직장 내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에 해당한다. 형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고용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법적 처벌 가능해도…신고조차 어려운 현실

전문가들은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하청, 용역, 프리랜서 노동자 등의 경우엔 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아 범죄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방치되는 업무 환경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러한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위협적"이라며 "하지만 2018~2019년 2년간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2380건임에 반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20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폐쇄성이 강한 구조일수록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문제는 성추행, 성폭행 등을 담당하는 담당관들이 대부분 내부 인사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기관이 있지만 좀 더 촘촘하게 즉각 감시할 수 있는 지역사회 차원의 위원회나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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