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이 문 대통령 방일과 정상회담 형식, 의제에 좀체 합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지하는 대로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수출규제를 둘러싼 극심한 시각차 때문이다. 모처럼 맞이할 수 있는 정상 간 소통의 기회인데 장기 교착을 벗어나기 위한 모멘텀이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바람으로 보인다. 마치 한일 간에 아무 일 없는 듯이 가서 덕담만 하고 오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한국이 일제 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국제법을 위반했으니 먼저 해법을 제시하라는 고압적인 태도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않은 분위기다. 한일이 마주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인류 화합과 친선을 도모하는 행사를 주최하는 나라가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닌 듯하다. 주최국 측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 해도 정상회담을 통해 무게 있는 메시지는 낼 수 있다. 구체적인 합의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인 내용이 선언된다면 그것 자체로 갈등 해결로 가는 주요 물꼬가 되기 때문이다. 스가 정부가 이번에 그런 기회와 가능성을 외면한다면 편협하고 인색하다는 평가를 면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정부는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투트랙 기조를 갖고 일본을 상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시간 내에 풀기가 불가능한 과거사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해결 가능성 높은 사안부터 절충점을 모색하자는 방향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다. 스가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법을 먼저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리며 정상회담에 끝내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이는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문제의 복잡성 탓에 한일 정상 간 담판식 타결을 촉구하는 의견이 많은 현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올림픽 성화봉송로 내 독도 표시를 지우지 않고 있으니 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에 가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때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요구로 우리 정부가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지운 사례와 너무 대조적이란 지적이다. 분위기가 이런데도 한국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통령의 방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성의를 보인다. 그러니 현안 해결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정상회담 형식과 의제를 설정하는 게 일본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스가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문 대통령이 방일한다면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에 머물고 있다. 서로 이웃 국가인 한일이 당면한 현실은 그리 한가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스가 정부의 열린 자세가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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