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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서울대 41% vs 도쿄대 21%…日최고명문에 女학생 적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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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보는 주간 연재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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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상징 정문(좌)과 도쿄대의 상징 야스다 강당의 모습. [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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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여자 비율 21.2% . 지난 3월 발표된 2021학년도 도쿄대 입시 결과는 일본에서 화제가 됐다. 도쿄대 150년 역사에서 여자 신입생 비율이 처음으로 20%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쿄대에서 여자 신입생 20%라는 수치는 넘기 어려운 일종의 '벽'처럼 여겨져왔다.

도쿄대는 일제가 패망한 이듬해인 1946년부터 여자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아카몬(赤門·도쿄대의 상징인 문)문턱을 넘은 여자 신입생은 총 19명. 전체 입학생 898명 중 약 2.1%였다. 그때보다 10배 늘어나는 데 75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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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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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도쿄대가 차지하는 위상은 한국의 서울대 이상이다. 역대 가장 많은 총리 대신을 배출했고 대법관 절반 이상이 도쿄대를 나왔으며, 역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도 가장 많다. 시대 변화에 따라 예전만큼 압도적이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여전히 도쿄대는 일본 학벌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은 일본 정·관·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늘 일본 대학 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이렇듯 자타공인 일본 최고 명문이지만 다른 세계 유수 대학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재학생 성비다. 영미권 명문대인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프린스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은 남녀 비율이 50대50에 수렴한다. 공대가 유명한 MIT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서울대 입학생 중 여자 비율은 41%였다. 도쿄대의 성비는 전체 일본 대학의 여자 입학생 비율인 45%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어째서 도쿄대에는 여학생 수가 유독 적은 걸까.

"도쿄대 여자는 결혼이 어렵다?" 지원자 성비 8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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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4월 도쿄 무도관(武道館)에서 치러진 도쿄대 입학식 모습. 도쿄대 입학식은 전통적으로 올림픽 유도, 가라테 경기가 벌어지는 이곳에서 열린다. [사진=도쿄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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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측은 지원자의 절대적 숫자에서 여자가 현저히 적은 점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올해 도쿄대 입시 모집 인원의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는 일반전형에서 여자 지원자 비율은 20.4%에 불과했다. 전년 대비 0.1%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응시자 대비 합격자 비율을 살펴보면 성별에 따른 별다른 차이점은 찾기 어렵다. 결국 지원자 부족이 낮은 입학률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지원자가 적은 이유에 대해 도쿄대 '남녀공동참가실장'이었던 마츠키 노리오 교수는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 의식이 강한 사회 분위기"를 들었다. 그는 "일본에서 남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부양하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지원한다는 분담 의식이 여전히 뿌리 깊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쿄대 구성원 비율에서 나타나는 압도적 성별 편차는 단순히 능력 차이 때문으로 볼 순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도쿄대를 다니다보면 주로 비수도권 출신 여학생들에게서 진학과 관련해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들로부터 "여자가 굳이 뭐하러 도쿄대에 가냐" "다른 대학들도 충분히 좋다"는 등의 잔소리를 듣거나 반대에 부딪혔다는 경험담은 그리 희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재학생들은 도쿄대를 방문한 여고생들로부터 "도쿄대에 가면 나중에 결혼 할 수 있느냐" 와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도쿄대학의 기형적 성비는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은 성불평등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대, 수시늘면서 女비율↑..."도쿄대도 전형 다양화를"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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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입시결과를 살펴보면 여학생들은 수시에서 합격자 비율이 10~20%포인트가량 높게 나타난다.[그래픽=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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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경우 여성 합격자 비율은 1960~1970년대 10%대에서 1980년대 들어 20%대로 올라선 뒤, 한동안 보합세가 지속됐다. 이후 2000년도에 30%를 훌쩍 넘어선 뒤 꾸준히 올라 2007년 처음 40%를 돌파한 이래 현재까지 40%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일본 일각에서는 2000년대 이후 서울대의 여성 입학 비율이 크게 늘어난 원인을 입시 제도 변화에서 찾으면서 도쿄대도 서울대처럼 전형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뉴스위크 일본어판은 수시제도 도입이 여학생들의 서울대 입학을 촉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12년간 서울대 정시와 수시전형별 합격생의 성비를 살펴보면, 여학생들은 정시보다 수시에서 합격자 비율이 10~20%포인트가량 높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오종운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여학생들의 서울대 입학이 늘어난 것은 분명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여학생들은 내신 관리 등 3년 내내 성실해야 하는 수시에서, 남학생들은 수리 난이도가 높고 단기간에 집중해야 하는 정시에서 경쟁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도쿄대도 2016년도 입시부터 일반전형 이외에 한국의 수시제도와 비슷한 추천형 선발제도를 두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전체 모집생 대비 추천제 선발 정원은 3%가량인 100명으로 상당히 적은 편이다. 추천 전형 입학자의 여성 비율은 45%에 달하지만, 100명 정원 중 합격하는 인원이 70명 정도에 불과해 도쿄대 당국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대, 女 지원자 늘리려 장학제도 운영...할당제는 고려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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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재학생 대다수가 여성인원 할당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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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측도 학내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고 연구의 다양성을 향상시킨다는 취지에서 여자 지원자 비율을 늘릴 방법을 모색해 왔다. 예를 들면, 여자 재학생들에게 모교인 고등학교에 가서 지원을 장려해달라고 하거나 여고생들을 위한 입학설명회를 열고 안내책자 등을 발행하는 식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2020년대까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의 비율을 최소 30% 정도로 한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도쿄대 여성 비율을 3~4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도 밝히고 있다.

여학생들만을 위한 장학제도를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10년 전부터 일부 입학생들에게 재학 4년간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2017년부터 캠퍼스 주변에 100개에 달하는 룸을 확보하고 입주 학생들에게 매달 3만엔(약 30만원)씩 최대 2년간 월세를 보조해주는 지원책도 운용하고 있다.

다만 여성 쿼터제의 경우 성별을 이유로 할당량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 도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도쿄대에서 드문 여성 교원이자 '남녀공동참가실' 위원이기도 한 쿠마다 아키코 교수는 "성적이 부족한 학생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굳이 특별 기준을 마련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교 구성원 대다수인 80% 정도가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결과의 평등에 대해서는 남녀 불문 도쿄대 구성원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대 집행부 구성원 과반을 여성이 차지... 부학장 "다양성 위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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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도쿄대 혼고(本鄕) 캠퍼스에서 대학입시센터시험을 치르고 있는 수험생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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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새 총장 선출과 함께 출범한 도쿄대 새 집행부 체제는 일본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예전과 달리 집행부 이사 8명 중 5명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여자 입학생 비율이 20%를 넘어선 것 외에도 집행부 과반수를 여성 교원이 맡게 된 것 역시 도쿄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각에선 일본에서 상징성이 큰 도쿄대의 이 같은 변화가 일본의 다른 대학들과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올해 처음 이사에 취임한 하야시 카오리 부학장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도쿄대는 여학생 비율이 크게 낮고 다양성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을 떠받쳐온 인재들을 배출해 온 도쿄대가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내놓음으로써 일본사회를 혁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에는 근래 도쿄대의 세계 대학 순위가 하락세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대한 관심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쿄대는 성비 불균형은 물론 국제 교류 평가면에서 해외 우수 대학들에 상당히 뒤처져 왔다.

일본은 G7에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자, 아시아 최고 선진국이라며 스스로 자부해온 나라다. 그러나 각종 성평등 지표 순위에서 언제나 서방 선진국들과 한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게 평가돼왔다. 여기에 도쿄대도 한몫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든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일본 사회, 그 정점에 있는 도쿄대가 기울이는 이 같은 노력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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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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