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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소녀상전시 독일 박물관장 "반일아닌데도 日철거압박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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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한 번의 사과로 해결될 문제 아냐…끝없이 얘기하고 소화해야"

"일본 정부, 독일 정부 자세와 유대인 학살 다루는 기억 문화 본받아야"

(드레스덴=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소녀상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반일이 아니라 기억의 문화인데, 일본의 압박은 직접 겪어보니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독일 공공박물관 중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기획한 레온티네 마이어 판멘쉬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은 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시된 소녀상 철거를 위한 일본의 전방위 압박에 혀를 내둘렀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과 큐레이터
(드레스덴=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레온티네 마이어 판멘쉬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오른쪽)과 바바라 회퍼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큐레이터(왼쪽). 2021.8.1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해결 노력을 다루면서 이동식과 청동 등 2개의 소녀상을 선보인 '말문이 막히다-큰 소리의 침묵' 전시회는 이날 3개월 반의 대장정을 마감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일본의 압박은 지난 4월 14일 전시회 개막 기자회견 하루 전날 주독일 일본대사관 문화담당 공사의 소녀상 철거 요청 서한부터 시작됐다.

판멘쉬 관장은 "소녀상 철거 요청은 전시회 전날부터 폭풍우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면서 "일본인, 미국인, 독일인 등 다양한 국적의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이메일을 하루에 100통 넘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와 시, 연방정부 차원에서 전방위로 압박도 있었다"면서 "외교적 차원까지 간 것"이라고 말했다.

바바라 회퍼 큐레이터는 "이메일 폭탄이 쏟아진 것 외에 사무실 전화통에도 불이 났다"면서 "전시회 바로 다음 날 전화를 한 한 일본인은 전시장소인 드레스덴과 멀리 떨어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산다면서 우리가 소녀상을 전시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측은 직원들에게 매일 수백통씩 쏟아진 소녀상 철거 요구 이메일 폭탄에 대해 관할 작센주 범죄수사국에 수사 의뢰했다.

주독일 일본대사관 측에는 이메일 발송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자신들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박물관 측이 독일 외교부를 통해 대사관 측에 재차 이메일 발송 중단을 요청하자 이틀 후 이메일 발송이 중단됐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연합뉴스

독일 공공박물관에 처음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드레스덴=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특별전시관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2021.8.1


판멘쉬 관장은 "진정 황당한 것은 우리가 소녀상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반일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위안부를 비롯해 트라우마적 기억에 대한 침묵 깨기를 통해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간 상반되는 요소들을 소화하는, 기억의 문화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한 첫 공개증언을 시작으로 다른 피해자들이 공개 증언에 나선 이후 이어진 시민사회의 해결 노력은 '기억의 문화'로서 본보기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나치 치하 드레스덴에서 유대인 학살, 나미비아에서 독일제국의 20세기 최초 종족 말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유고슬라비아 전쟁범죄, 호주 원주민 카우르나족의 몰수 피해 등 말문을 막히게 하는 트라우마를 정조준했다.

전시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독일 정부는 110여년만에 나미비아에서 종족학살을 자인하고 용서를 빌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터키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로 공식 인정하고 숨진 모든 이들을 기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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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공박물관에 전시된 소녀상
(드레스덴=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독일 공공박물관 중 최초로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특별전시관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2021.4.15 yulsid@yna.co.kr (끝)


회퍼 큐레이터는 "예술을 통해 이런 문제를 계속 보여주는 것은 힘겹고 오래 걸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는 변화를 가져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판멘쉬 관장은 "일본에 기억의 문화에 대한 논의에 공식 라운드테이블이나 토론회 등을 통해 참여하라고 제안했으나, 이는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각종 트라우마를 다룬 우리가 본보기로 지향한 것은 유대인 학살을 다루는 독일의 기억 문화"라면서 "일본 정부는 독일 정부의 자세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은 한국 정부에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한 번 얘기하고, 한 번 사과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끝없이 얘기하고 또 얘기해서 개인적 기억과 공동체적, 국가적 기억 사이에 상반된 감정과 긴장을 소화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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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촬영하는 독일 공공박물관 소녀상 전시 부부작가
(드레스덴=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1일(현지시간)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특별전시관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후 폐막식에서 참가자들이 평화의 소녀상에서 부부 조각가 김서경·김운성 작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8.3 yulsid@yna.co.kr


판멘쉬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전시회를 개막하기 전부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매일 수백통의 이메일 폭탄 속에 압박이 실제로 닥쳤을 때 제대로 자세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시를 본 관객들은 위안부 문제는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고, 어마어마한 공감과 공명이 이뤄졌다"면서 "전방위 압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전시회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전시회를 하고, 소녀상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 전시는 매우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는 현재진행 중"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했고,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동식 소녀상은 휠체어를 타고 드레스덴 시내 곳곳을 활보했고, 많은 시민과 대화를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박물관장으로서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앞으로도 소녀상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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