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언론에 재갈물리는 東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각국이 형사처벌 조항 속속 도입

中, 10개 부처 동원해 ‘여론 정화’

태국은 당국에 IP 추적권한까지

“독재나 정통성없는 정권들이 가짜뉴스라며 비판언론 억압”

중국 당국이 선전, 공안, 세무, 법원 등 관계 기관을 총동원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의 ‘가짜 뉴스’ 단속을 펼치기로 했다. 미·중 갈등, 코로나 방역 장기화,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내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등에 대비해 소위 ‘여론 정화(淨化)’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4일 중국신문출판방송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를 비롯해 법원, 검찰, 경찰 등 10개 부처가 베이징에서 합동회의를 열고 가짜 뉴스 단속을 위한 ‘군사작전(戰役)’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2014년부터 언론 윤리, 시진핑 사상 등에 대해 시험을 보고 합격한 사람만 기자증을 발급하며 언론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김도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국 정부도 지난달 29일 관보를 통해 새 보도 규정을 발표, 국민의 공포를 유발하거나 국가 안정을 해치는 뉴스를 전파한다고 판단된 온·오프라인 뉴스 제작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동아시아 국가의 정권들이 잇따라 강력한 언론 통제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과 가짜 뉴스 단속 등의 구실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길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올 초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 세력은 지난 5월 반정부 시위 소식을 전하던 언론사들을 강제 폐쇄하고 기자 수십 명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까지 체포해 미국 정부의 반발을 샀다. 같은 달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캄보디아 정부가 독립 언론인들의 코로나 상황 보도를 제한하고, 정부 비판자들을 기소하며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억압해왔다”고 폭로했다. 캄보디아 정부가 언론인과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에게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거짓 선동을 할 경우 사법 처리된다’고 지속적으로 위협해왔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지난 3월 코로나와 관련해서 잘못된 정보 등을 보도했을 경우 최대 징역 3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가짜뉴스법’을 만들어 논란을 불렀다. 이웃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5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싱가포르 기원설을 언급한 게시물 내용을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정보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가 직접 소셜미디어의 통제에 나섰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언론 규정은 세부적 내용도 각종 독소 조항들로 채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국이 발표한 보도 규정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문제 기사라고 판단할 경우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작성자의 IP(인터넷 접속 주소) 제공을 요구하고 인터넷 서비스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태국 정부의 언론 보도 규정 발표 이후 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6개 단체가 정부 규탄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인권변호사들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국민적 반발이 커지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17개 국제 인권단체도 비판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태국 헌법과 배치되며, 표현의 자유와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국제 규약상 의무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언론 통제에 나선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거나, 집권 세력이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특징이 있다. 언론 통제를 주도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육군참모총장 시절이던 2014년 5월 쿠데타를 진두지휘해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 군부는 쿠데타 초기에는 “정국이 안정되는 대로 민정 이양을 실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헌법 개정을 거쳐 짠오차 총리가 민선 총리에 오르며 권력을 장악해갔다.

미얀마 군부 역시 올해 2월 쿠데타를 일으켜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지의 집권 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을 축출하고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한 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임시 총리라고 선언했다. 독재나 정치 불안정이 일상화된 일부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 대유행 상황이 비판 언론 탄압에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다수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상황을 맞아 비판 언론을 억압하는 데 가짜 뉴스 관련 법규를 활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언론 탄압은 지역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향후 코로나 회복 과정 이후 국민이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