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한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 병사들이 14일(현지시간) 아프간 서부 헤라트주의 주도 헤라트에서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헤라트|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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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20년 전쟁을 끝내고 질서 있게 철수한다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계획이 꼬이고 있다. 아프간 반군인 탈레반이 예상보다 빠르게 아프간 영토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그동안 아프간 정부의 자치 능력 및 방위력 증진을 위해 쏟아 부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퇴각조차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 전개되자 당황하는 기색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요원과 동맹국 요원의 질서 있고 안전한 감축 그리고 우리 군을 도왔던 아프간인들의 질서 있고 안전한 탈출을 보장하기 위해 약 5000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 경비 등을 위해 미군 1000명을 남겨두기로 한 바이든 정부는 지난 12일 카불에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미군 3000명을 배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틀 만에 1000명 추가 배치를 발표했다.
주말을 맞아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 발표에 앞서 국가안보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다. 탈레반이 칸다하르, 헤라트, 마자르이샤리프 등 주요 거점 도시들을 점령하고 카불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전개되자 다급해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9월 1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지난 7월 철수 완료 시점을 8월 말로 앞당긴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아프간 관련 대책과 원칙을 함께 발표했다. 그는 장래 아프간의 테러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을 유지하라고 미군과 정보 당국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아프간에서 추가 유혈사태를 막고 정치적 합의를 추진하기 위해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탈레반 측에 미국 요원과 임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떤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사실도 전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내분에 미국이 끝없이 주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면서 철군 방침은 유지했다. 그는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미군의 1년 또는 5년 추가 주둔은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5월1일을 미군 철수 시한으로 탈레반과 합의하고 미군을 2500명으로 감축한 상황에서 자신이 정권을 물려받는 바람에 선택지가 극도로 제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기존 합의를 따르되 철군 시점을 몇 달 늦추거나 병력을 증강시켜 탈레반과 다시 싸우는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2명의 공화당 대통령과 1명의 민주당 대통령에 이어 아프간 주둔 문제를 다루는 네번째 대통령이라면서 “나는 이 전쟁을 다섯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미리 상정했던 퇴각 시나리오가 붕괴되면서 아프간 주재 요원들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미 주요 기밀 자료 폐기 작업에 돌입했다. 미국 CBS 방송은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이 36시간 내에 소수의 핵심 인력만 제외하고 대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복수의 외교·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초 미군과 정보 당국은 카불이 최소한 미군 철수 이후 6개월에서 1년은 버틸 것으로 내다 봤지만 최근엔 3개월 이내 함락 가능성이 제기됐고, 급기야 몇주 이내에 함락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탈레반은 아프간 주도 34개 가운데 24개를 점령했으며, 카불에서 불과 11㎞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년 전 전쟁을 시작한 이후 미국이 아프간에서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내렸던 잘못된 판단착오가 퇴각 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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