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탈레반 재집권에 카불은 긴장상태
택시선 여성 승객 거부, 여성 벽화 지우는 중
일부남성 "길에 여성 있는 최후의 날" 비웃음
아프가니스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헤라트에 거주하는 60세 파지아의 말이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진군 소식을 듣고 그가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여분의 부르카 구매였다. 탈레반이 도시를 점령한 뒤 집안 여성들이 행여나 부르카를 구하지 못할까 봐서였다. 그는 1990년대 탈레반 집권기의 악몽과도 같은 여성 탄압을 기억하고 있다.
20년 만에 복귀한 탈레반의 통치 2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특히 젊은 아프간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인들. 중앙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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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수도 카불의 여성들은 매일 가파르게 오르는 부르카의 가격을 두고 흥정을 벌이고 있다. 부르카는 신체의 모든 부위를 가리는 전통 여성 복장으로 눈 부위도 망사 형태로 밀폐된다. 눈만 드러난 니캅, 얼굴이 드러나는 히잡 등과 비교해 가장 보수적인 복장이다. 지난해까지 200AFS(약 3000원)가량이었던 부르카의 가격은 현재 2000~3000AFS에 팔리고 있다. 탈레반이 집권하면 부르카 작용을 강제할 거라는 예측이 가파른 가격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탈레반 측은 정권 이양 후에도 여성 인권이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카불을 접수한 15일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도 히잡만 쓴다면 교육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허용된다”고 밝혔다. 샤힌 대변인은 지난달 24일에도 “새로운 정부에서 여성들은 일하고, 학교에 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15일(현지시각) 톨로뉴스TV 대표 로트풀라 나자피자다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그려져 있던 벽화를 한 남성이 흰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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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대다수 아프간인은 탈레반의 과거 통치기를 떠올리며 이를 믿지 못하고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아프간을 통치할 당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엄격하게 적용해 국민이 음악·TV 등을 즐기는 걸 금지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외출·교육 등에도 제약을 가했다.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고 지목하기만 하면 돌로 때려죽이게 하는 끔찍한 사형제도까지 도입했다. 지난 2001년 3월엔 우상화를 배격한다며 6세기부터 내려온 ‘바미얀 석불’을 파괴해 전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다.
탈레반은 지난 1994년 아프간 내전 중에 무함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된 수니파(派) 정치조직이다.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말 그대로 2만5000여 명의 학생들이 뿌리였다. 이들은 당초엔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 힘을 쏟았다가 여러 아프간 전통 가문의 지지를 얻으면서 원리주의 무장 세력으로 발전했고, 96년 정권 획득 후엔 초강경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5세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미안 석불은 암벽을 깎아 만든 대형 불상으로 2001년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에 의해 폭파됐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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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군 침공 후 약 20년간 상대적 자유를 누려온 아프간 여성들에겐 탈레반 복귀가 악몽일 수밖에 없다. 이미 수개월 전 탈레반에 의해 점령된 도시들에선 “여성들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복장을 해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증언이 잇따랐다. 지난 6월 말에는 탈레반이 북부 타카르 지방의 루스타크 지역을 점령한 뒤 모스크에서 주민들에게 15세 이상의 모든 소녀와 40세 미만의 과부들은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가디언에 따르면 탈레반 진군 후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을 향해 “오늘이 길거리에 나오는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비웃고 있다. 이미 카불 시내는 ‘탈레반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아직 지도부의 공식 지침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택시 기사들은 여성 승차를 거부하고 있다. 전통의복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이 그려진 벽화에 페인트칠하는 남성도 포착됐다. 현지 톨로뉴스TV 대표 로트풀라 나자피자다가 “카불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은 1만7000회 넘게 리트윗됐다. 지난해 11월 아프간 카불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한 24세 여성은 “24년 동안 일군 모든 것을 불태워야 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젠 학위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 우리가 다시 모든 것을 뺏길 줄 몰랐다”고 말했다.
탈레반을 피해 피난온 아프간 여성과 자녀들. [AP=연합뉴스] |
다만 탈레반 집권 2기가 예전 같지 않을 거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은 통화에서 “탈레반은 워낙 악랄한 전례로 이슬람 사회 내에서도 배척받았었다”며 “이 때문에 현재 기존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반발했을 뿐이지 탈레반에 완전히 아프간의 미래를 맡기겠다는 국민은 별로 없다. 윤리와 도덕이 강화되겠지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면서 수도 카불 주민들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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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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