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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이상언의 '더 모닝'] 아! 아프가니스탄, 이곳은 버림받은 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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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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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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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자 중앙일보에 쓴 시시각각 칼럼(‘아프간의 실패, 한국의 기적’)에 ‘이제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은 시간문제’라고 썼습니다. 그 칼럼에 제가 20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때 작성한 ‘취재일기’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작전명인 ‘불굴의 자유’나 ‘무한 정의’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고 예상했다는 것도 적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세 가지를 써 봅니다.



①이렇게 복잡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은 6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서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까지 더해집니다. 위 지도에서 오른쪽 상단에 꼬리처럼 삐죽이 나온 부분 보이시죠? 그 끝이 중국입니다.

여러 제국이 한때 이 땅을 지배했습니다. 동방원정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탈레반의 부흥지가 된 칸다하르가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칭기즈칸도 잠시 정복했습니다. 그 전에 페르시아와 투르크가 융성했을 때는 거기에 속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달리'어가 페르시아계 언어입니다(이란 사람이 '달리'어를 들으면 뜻을 안다고 합니다). 인도의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의 석불이 그 흔적 중 하나입니다. 근세에는 영국과 소련이 잠시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년은 미국이 사실상 지배국이었습니다.

역사가 이렇다 보니 민족 구성이 복잡합니다. 40% 이상이 파슈툰족입니다. 파슈툰족은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에 나뉘어 살고 있습니다. 영국이 19세기 후반에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선을 이상하게 그려서 생긴 일입니다(당시에 파키스탄은 없었습니다). 북동쪽에 꼬리 모양의 땅이 생긴 것도 영국의 국경 설계 때문입니다(러시아가 인도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타지크족과 우즈벡족이 많습니다. ‘하자르’라는 민족도 있습니다. 몽골계입니다. 햇볕에 그을린 한국의 농부와 얼굴이 흡사합니다. 하자르족은 이슬람 시아파입니다. 강성 수니파인 탈레반과는 종교적 원수지간입니다.

타지크족·우즈벡족·하자르족은 파슈툰족이 중심인 탈레반과 1996년부터 5년간 내전을 벌였습니다. 미국이 개입한 지난 20년간의 싸움도 사실상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습니다. 파슈툰족은 자기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름이 어원적으로 파슈툰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탈레반은 파슈툰족 중에서도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집단이 만든 세력입니다. 온건 파슈툰족과도 또 다릅니다. 이 땅에서 국가적 통합이 성사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공유하는 가치가 없으니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고,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적 정체성’은 희박하지만 그럭저럭 섞여 살았는데 소련의 침공(1979년) 이후에 계속된 내전 때문에 평화롭게 살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②공항으로 몰려드는 이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수도 카불 인근의 공항으로 몰려든 아비규환의 장면이 외신으로 전해집니다. 피난민이 이륙하는 항공기의 날개와 바퀴에 매달렸다가 추락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동서남북이 다 육지로 연결되는 내륙 국가인데도 필사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도를 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카불과 그 주변 지역에서 외국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파슈툰족의 근거지인 파키스탄입니다. 다른 하나는 비행기로 북쪽 힌두쿠시 산맥을 넘는 것입니다.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것이 가장 짧은 항로입니다. 20년 전에 저도 그 길로 헬기를 타고 오갔습니다.

공항이 봉쇄되면 사실상 탈출로가 막힙니다. 북쪽의 산악지대를 통과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길이 좁고 산세가 험해 목숨을 건 모험이 수반됩니다. 사륜구동 차로도 산을 넘기 어렵습니다. 노새를 타거나 걸어야 합니다. 밤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옵니다. 산 정상 쪽은 만년설로 덮여 있습니다. 이처럼 북쪽의 산맥이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는 것을 막아줬습니다. 동시에 매우 고립된, 소련의 옛 위성국 만큼도 국가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나라가 됐습니다.

공항을 통한 탈출에 실패한 사람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산악지대로 피신할 것입니다. 공수의 주체가 뒤바뀐 새로운 게릴라전의 서막이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③남 주긴 아깝지만 비용이 크면 포기하는 곳



제국들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습니다. 저항 때문에 치르는 비용에 비해 얻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포기가 빨랐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거나 자원 부국이라면 이렇게 갑자기 손을 털고 나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하는데 개발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돼도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활용이 어렵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요충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영국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소련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 대륙에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면서 파키스탄 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를 근거지로 삼은 이슬람 테러 세력의 위협을 없애려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친서방 정권을 세우면 그 일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언제든 파키스탄 땅에 몸을 숨길 수 있기에 섬멸이 불가능했습니다. 미국은 20년 만에 오판을 시인했습니다.

다들 탐을 내기는 했는데 엄청난 비용 지불과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끝까지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 주기 아깝고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계속 큰 대가를 치르며 꼭 손에 넣고 있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드는 땅입니다. 위치, 지형, 역사, 민족 구성이 이런 독특한 곳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특성이 비극의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반복되는 난리 속에서 그곳의 보통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돌아온 탈레반의 공포 속에서 필사적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상황을 전하는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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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태워달라" 카불 공포의 대탈출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미국대사관에선 성조기가 내려갔고 탈레반이 장악한 대통령궁엔 탈레반 깃발이 올라갔다. 일부 아프간 국민은 이날부터 과거 ‘공포정치’로 악명 높았던 탈레반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몰려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16일 수천 명이 몰려와 비행기를 태워 달라며 활주로를 장악하자 공항 운영은 마비됐다. 1975년 남베트남 패망 당시 ‘사이공 탈출’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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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16일 이 나라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문 열린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필사적으로 탑승교에 오르고 있다. 전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국외로 도주하면서 나라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몰려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16일 미군이 질서 유지를 위해 발포하고 최소 다섯 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총격에 의한 것인지, 깔린 것인지 상황이 모호하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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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하늘길은 16일 미국 등 각국 정부가 자국민을 실어나르기 위해 급파한 항공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막혔다.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은 밀려든 인파로 인해 모든 민항기의 운항을 중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공항 영상에는 시민들이 비행기 탑승교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또 다른 영상엔 공항으로 달려가는 시민 행렬이 담겼다. 총소리와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AFP통신은 “미군이 이들을 활주로에서 쫓아내기 위해 경고사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공항에 몰려든 군중이 통제 불능 상태였다”며 “발포는 혼란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공항에서 아프간인이 여러 명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목격자들은 최소 5명의 사망자를 봤다고 전했지만 사인이 총격인지, 압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탈레반 “히잡만 쓰면된다”지만, 여성들 가혹한 율법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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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민을 버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도피한 뒤 대통령궁을 접수한 무장 탈레반 대원들이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궁엔 탈레반 깃발이 걸렸다. 2014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한 가니는 2006년 유엔 사무총장에도 출마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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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엔 이날 카불에서 80명의 부상자가 이송됐다.

은행에서도 사람들이 앞다퉈 몰려 현금을 인출하거나 달러 사재기를 했다. 현지 화폐인 아프가니 환율은 지난주 달러당 80아프가니에서 이번 주 100아프가니로 뛰었다. 탈레반은 전날에 이어 16일에도 과거 집권기(1996~2001년)의 강경 이미지와 다른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이들은 과거 국호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 명의의 메시지에서 “아프간 국민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라”고 촉구했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정부나 군에서 일한 모든 이들은 용서받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복수할 계획이 없다”며 “아프간인들은 두려움에 도망치지 말고 남아 달라”고 요청했다. 약 35만 명의 정부군과 경찰에는 “무기를 반납하고 탈레반에 합류하면 사면하겠다”고 했다.

샤힌 대변인은 BBC 인터뷰에서 “앞으로 수일간 아프간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원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또 다른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주민과 외교사절의 안전을 지원하고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과도정부의 수반은 알리 아흐마드 잘랄리(81) 전 내무부 장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탈레반은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여성 권리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탈레반 측은 지난 15일 “히잡(이슬람 여성의 스카프)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성 혼자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메시지는 과거 탈레반의 모습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주의자 집단인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음악·TV 등 오락을 금지했고 도둑은 손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른 사람은 돌팔매로 처형하는 가혹한 중세 형벌을 적용했다.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 했고, 여성은 외출할 때 부르카(온몸과 얼굴까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착용해야 했다. 여성의 취업과 각종 사회활동을 제약했으며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 파괴, 무함마드 나지불라 전 대통령의 고문 및 공개 처형, 여성 공개 총살 등 탈레반의 야만적 행위가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원래 한 벌에 약 200아프가니 정도이던 부르카 가격이 최대 3000아프가니까지 뛰었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프간이 테러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아프간에서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을 재건하는 데 2년이 채 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의 잔당이 세력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지방 탈레반 세력과 테러 조직이 뒤섞여 새로운 형태의 테러 프랜차이즈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박형수·정은혜·하수영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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