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역사적으로 적대적…경제·난민·마약 문제 얽혀 협력 불가피
카불 점령한 탈레반 |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잡자 이웃 나라인 이란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미국에 적대적이란 점에선 탈레반과 같지만 그렇다고해서 아프간 사정 급변에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이란이 미군의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탈레반에 현금과 총을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졌지만 이란과 아프간은 종교·역사적으로 여전히 불편한 관계이다.
하지만 양국 사이엔 경제·난민·마약 등의 문제가 얽혀있어서 불편한 동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탈레반 전투 요원들 |
◇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탈레반 VS. 시아파 맹주 이란
아프간 남부에서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은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 단체다.
이에 반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맞서는 시아파의 맹주 국가다.
이런 이유로 아프간 내 여러 군벌이 내전을 벌이던 1990년대 중반 이란은 탄압받는 시아파 소수 민족을 지원했다.
탈레반 집권 시기인 1998년에는 아프간 북부에서 이란 외교관 11명이 피살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일로 양국이 전쟁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중동 내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는 이란은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과 각을 세워왔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니파인 IS가 시아파를 배교자라고 부르며 중동 내 시아파 주민 등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테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아프간과 동쪽으로 900㎞가량 국경을 접하는 이란에 아프간을 중심으로 수니파 무장 단체가 세력을 키우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이란 대통령실 산하 전략센터 소속 디아코 호세이니 고문은 블룸버그 통신에 "이란과 탈레반 사이에 적대감이 계속된다면 국경 지역에서는 가차 없이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란은 이슬람 신정일치 국가이지만, 여성의 교육과 사회 참여가 허용된다. 이란 국민들도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동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탈출 위해 카불 공항에 모인 아프간 시민들 |
◇ "탈레반 집권은 현실"…불편해도 협력해야
호세이니 고문은 "이란 관리들도 탈레반의 집권이 현실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란 외교관은 아프간 내 정세 불안으로 더 많은 난민이 이란으로 넘어올 수 있기 때문에 탈레반과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직후 국경 지역에 임시 난민촌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수일 뒤 아프간 국경을 열지 않겠다며 방침을 뒤집었다.
외신들은 오랜 내전을 피해 이란으로 넘어온 아프간 난민이 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아프간에서 넘어오는 난민과 마약 문제로 이란 정부는 골머리를 앓아왔다.
유엔마약범죄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아편의 90%, 모르핀 72%, 헤로인 20%가 이란 당국에 의해 적발됐다. 이들 대부분은 아프간에서 넘어온 것들이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에 아프간은 중요한 무역 대상국이다.
서방으로 원유를 수출할 수 없는 이란은 인접국인 이라크, 아프간 등 인접국에 휘발유를 수출하고 있다.
아프간으로부터 흐르는 헬만드강은 이란 남부 지역의 중요한 수자원이기도 하다.
의회서 취임 연설하는 라이시 이란 대통령 |
보수 성향의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인접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서방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 발전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이란과 아프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란 매체들은 탈레반이 20년 전 집권기와는 다르다며 협력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포아드 이자디 테헤란대 교수는 "이란 정부는 탈레반이 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깨달았으며 이런 현실 때문에 탈레반과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은 탈레반이 좋아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며 20년 전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란과 아프간의 관계는 탈레반의 소수 민족 탄압 여부와 광범위한 영토를 탈레반 정권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궁 장악한 탈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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