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PA' 등 도전적 연구시스템 도입해 '일취월장'
한국형 DARPA, 자율-독립-일관성 과제
2016년 미 해군이 시험운항에 성공한 무인함정 '드론쉽'. 드론십은 잠수함을 비밀리에 추적한다. [사진=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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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집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 동안, 탱크도 제대로 못 만들던 시베리아의 '북극곰'들이 어느새 자신들을 추월한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곰곰이 원인을 따져 본 끝에 "아이디어와 자원은 넘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결과물을 얻어 내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냅니다. 그 결과 이듬해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ㆍ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이 탄생합니다. 실패해도 문책하지 않는 도전적 국방 연구개발(R&D) 시스템이죠. DARPA는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터넷을 태동시킨 아르파넷을 개발하는 등 미국이 역사상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최첨단 전략 무기 기술의 산실로 유명합니다.
◇DARPA의 탄생
DARPA는 과연 어떤 조직이고, 어떤 역할을 할까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DARPA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한 파괴적 혁신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위해 국방 분야 연구개발의 기획ㆍ평가ㆍ관리를 수행하는 전문관리기관입니다. 좀 어렵죠? DARPA는 뛰어난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대학ㆍ민간 연구소와 상업화를 담당하는 산업계 간의 가교(Bridge) 역할을 수행합니다. 인재와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킵니다.
쉽게 말해 쓸만한 아이디어가 있다 싶으면 일단 투자해서 충분히 숙성시켜 놓은 후 산업계와 연결해 최종 상업화하도록 중간 매체 역할을 합니다. 프로그램별로 3~5년간 100억~150억원을 투자하는 데 연간 250개 안팎의 프로그램에 약 35억달러(3조8000억원)을 씁니다. 2021년의 경우 DARPA는 기초연구에 5830억원(15.1%), 응용연구 1조4960억원(38.8%), 개발연구 1조6270억원(43.4%) 등을 썼다고 합니다. 미국 국방예산의 5% 안팎을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선도적 연구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는 거죠.
◇독립적·수평적 연구 조직
DARPA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권 등 외부의 영향력 행사를 최소화하는 독립적 조직이라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 조차 DARPA의 연구 개발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합니다. 반면 기관 내부는 철저히 수평적입니다. 국장-부서장-민간인 프로젝트매니저(PM)로 짜여진 단순 명료한 조직 구조로 연구자들이 행정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합니다. 또 부서장들도 각 PM에 간섭하지 않고 오직 신규 PM 발탁에만 신경씁니다. 자연스레 PM의 역할이 큽니다. PM은 국가 안보나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실패할 위험성도 커서 민간에서 다루기 힘든 연구 개발 과제를 선정합니다. 크게 ▲획기적 수혜가 기대되나 실패 위험성이 큰 것 ▲ 과제해결 아이디어가 혁신적인 것, ▲기초연구와 시장 수요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것 등이 선택됩니다. 유연한 연구제도도 특징입니다. 내부 경쟁 촉진이나 외부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있도록 경쟁형 R&D, 경진대회 등 다양한 연구 개발 방식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중간에 연구 개발의 목표를 변경(Moving Target)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DARPA의 극초음속 공기흡입 무기 개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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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첨단 무기 기술 도약 주역
DARPA가 탄생한 후 미국의 첨단 전략 무기 기술은 일취월등합니다. 아르파넷 말고도 위성항법시스템(GPS), 스텔스 기술, 무인항공기, 생각으로 움직이는 로봇 팔, 스마트 탄환, 강화보병슈트 등이 DARPA의 작품입니다. 요즘엔 우주 항해나 사이버 분야도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미국은 DARPA와 같은 해 창설한 항공우주국(NASA) 주도로 우주 개발 경쟁에서도 곧 바로 소련을 따라 잡아 1969년 인류 최초 달 착륙(아폴로 11호)에 성공하는 등 역전극을 펼쳤습니다. 결국 1980년대까지 이어진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원론적으로 미국이 소련에 승리한 것은 이념ㆍ체제와 관계없이 모든 분야에서의 '혁신'에서 앞서나갔기 때문이겠지만,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첨단 전략 무기 기술에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도전적ㆍ창의적 연구 시스템도 큰 몫을 했죠.
미국 방위연구고등계획국(DARPA)가 공개한 협동자율작전 개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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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DARPA, 독립·자율·일원화 핵심
한국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이같은 시스템이 일부 도입돼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첫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현무4 탄도미사일,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스템을 갖춘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K2 전차, K9 자주포 등 수많은 첨단 무기 개발ㆍ국산화가 이뤄졌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일 뿐 신기술ㆍ신무기를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지는 못하고 있죠.
마침 과기정통부와 ADD가 지난 20일 머리를 맞대고 보다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전쟁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파괴적 혁신 기술 개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소식이네요. 국가 안보에 원래 '과학'과 '국방'이 따로 있나요. 이 자리에서 과기정통부 측은 한국식 DARPA 시스템 강화를 위해 ▲독립성 확보 ▲PM 자율성 강화 ▲범부처 차원의 일관된 수행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답니다. 우리 군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 뿐만 아니라 동북아 최강대국들과 맞서야 하며, 머지않아 우주로 가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쇠가 어떻게 물에 뜨나'라는 상식을 깬 도전을 통해 거북선을 만들어 조선을 구한 것처럼 과기정통부ㆍADD의 이번 회의도 미래 한국군에게 제대로 된 무기를 들려줄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50주년을 맞아 3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열린 국방과학 합동 시연회에서 무인수색차량이 작전 수행 시연을 펼치고 있다. 무인수색차량은 기갑·기계화 부대 선단에서 위험지역 수색·정찰을 위하여 원격·자율주행, 주야간 감시, 피아식별 및 원격무장, 화학작용제 탐지, 지뢰탐지 임무 등을 수행한다. 2020.8.5/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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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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