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불법 출금 ‘검사 내전’ ①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6월 11일 서울 서초동 고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성윤(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고검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이른바 검찰 내 요직 '빅4' 중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모두 거쳤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기소까지 됐지만 직무에서 배제되거나 자진사퇴하기는커녕 오히려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 고검장은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였습니다. 재판에 넘겨지면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피고인 검찰총장’이 탄생할 뻔했습니다.
사실 서울고검장도 서울·인천·경기·강원을 관할하는 검찰 내 2인자로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 ‘피고인 서울고검장’의 재판이 오는 23일 시작됩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예전에 고위 검사들은 검찰 조직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의혹만 제기돼도 사퇴를 했는데 요즘엔 순리가 안 통한다”며 “현직 서울고검장이 재판을 받는 건 검찰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檢 "이성윤, 안양지청의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에 외압"
사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은 2019년 4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먼저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해 3월 22일 늦은 밤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별장 성접대’ 사건 조사 대상이던 김 전 차관은 기습적으로 출국을 시도했습니다. 이때 김 전 차관이 법무부 출입국본부 관련자로부터 본인이 출금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정보를 사전에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법무부가 수사의뢰를 하면서였죠.
안양지청 수사팀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일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과정에서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이규원 검사가 허위로 출금 요청서를 작성하고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승인한 예상 밖의 범죄 혐의를 발견하게 된 거죠. 출국 시도 당시 김 전 차관은 당시 피의자나 피내사자 신분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긴급 출금을 하기 위한 법적 요건에 부합하지 않았었죠. 법률상 근거가 없는 임의 조직인 진상조사단 역시 조사 대상자를 출금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22일과 이튿날인 3월 23일 작성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와 법무부 장관 승인 요청서. 이 검사는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엔 이미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2013년 사건번호를, 승인 요청서에선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1호란 사건번호를 적었다.[중앙일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고검장은 당시 안양지청 수사팀을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습니다. 검찰은 이 고검장이 반부패부 부하직원들을 통해 안양지청 수사팀의 수사를 막기 위해 안양지청 간부 검사들에게 수사 외압을 넣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안양지청의 수사는 멈췄습니다.
그렇게 묻힐 것 같았던 이번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당시 안양지청 수사팀을 이끌었던 장준희 부장검사가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접수하면서부터입니다. 결국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가 재수사에 착수했고, 베일에 가려진 직권남용 범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재수사 결과 김 전 차관 출국 당시 불법 긴급 출금을 주도한 인물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이 지목됐습니다. 그는 차 본부장, 이 검사의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청와대·법무부·검찰 고위 관계자들도 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다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팀장인 이정섭 부장검사를 교체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후임 수사팀이 진행 중입니다.
━
이성윤 "외압 없었다…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에게도 보고"
이 고검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고검장은 지난 4월 18일 입장문을 통해 "수원지검 안양지청 수사와 관련 본인을 비롯한 반부패강력부 검사들 누구도 외압을 가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고검장 측은 당시 안양지청에서 보고한 내용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보고했고, 총장의 지시를 받아 일선에 내려보냈으며 이는 당시 작성한 업무일지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의적으로 안양지청에 외압을 가해 수사를 중단하도록 했다면 검찰총장에게 보고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반면 수사팀은 공소장에서 안양지청이 2019년 6월 19일 이규원 검사의 범죄사실을 적시한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검사 비위 혐의 관련 보고’를 반부패강력부에 보고하자 이튿날 보고서를 전달 받은 이 고검장은 '검사 범죄 등 비위에 관한 검찰총장 보고 의무'를 어기고 문무일 총장에게 "'이규원 검사의 범죄 혐의 발견과 검찰총장 및 수원고검장에 대한 보고, 이 검사 입건 후 추가 수사 진행 계획' 등 보고서 핵심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사팀과 이 고검장 양측은 23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같은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준기일에는 피고인이 참석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변호인이 대신 이 고검장의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
9월 이후 본격 시작…김오수·조국 등 증인으로 나서나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 수사팀은 7월 1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조처 과정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기소 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법원의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이광철·차규근·이규원)과 ▶수사 외압 사건(이성윤)의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선일)로 같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하지는 않고 병행 심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불법 출금 사건은 이미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며, 9월 17일 마지막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한 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고검장의 수사 외압 사건 재판 역시 이 스케줄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출금 조치 당시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오수 검찰총장이 형사재판 증인으로 출석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된다면 현직 검찰총장으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건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법무실장이었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도 검찰 진술 조서를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어 법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의 본질은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등 권력집단이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아무리 범죄 의심을 받는 자여도 엄격한 적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라 법조계에서 매우 주목하는 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법정에서 벌어질 절차적 정의를 둘러싼 '검사들의 내전'을 법(法)ON이 충실히 전해드리겠습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