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은 ‘영원한 전쟁’을 끝내려다 비용도 더 들고, 더 불명예스럽고, 더 긴 전쟁에 접어들게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10년 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했을 때 이미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라며 “‘이라크의 교훈’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제2의 이라크 되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미국과 영국은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미군의 이라크 철군 이후 종파·부족 갈등에 따른 정정 불안을 틈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폭 테러 등을 벌이며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아프간도 비슷하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라크 때처럼 아프간 역시 민주정부 기반이 약해 미군 철수 직후 탈레반이 장악할 거란 사실은 모두 예상했다”며 “탈레반의 아프간 탈환은 알카에다, IS 등 급진 이슬람 세력의 부활로 이어질 거란 사실 역시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 공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아프간 철수를 본격화하면서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중국 서부 신장에서 8000~1만 명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아프간으로 들어왔다. WSJ는 “IS와 탈레반이 적대관계라지만, 두 단체 모두 미국을 증오하고 미국인 사살을 영광스럽다고 믿는 자들”이라며 “아프간이 이들 중 누구의 수중으로 떨어지더라도 아프간은 반미 테러리스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6일 IS의 아프간 지부인 IS-호라산(IS-K)이 카불 공항에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미군 13명을 포함해 170여 명이 숨지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미군 철수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카불 공항 주둔 인력도 줄고 있어 테러 위험은 커지고 있다.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이 테러전에 휘말린 양상이다.
영국 하원 국방특별위원장인 토비아스 엘우드는 “테러리스트 집단은 지난 20년이 얼마나 헛된 세월이었는지 보여주려 할 것”이라며 “9·11 테러와 같은 대대적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과거 ‘제국의 무덤’으로 불렸던 아프간이 향후 ‘테러의 요람’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아프간전 종식은 옳은 판단일 수 있지만, 출구 전략이 정교하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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