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와 노조의 협상이 결렬됐다.
이로써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가능성이 더 커졌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137개 사업장 소속 5만600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31일 오전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권 장관은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보건의료노조의 요청에 따라 총 12차례 협의를 진행"했으며 "어제도 새벽까지 14시간 밤샘 협의를 진행"해 "정부와 보건의료노조가 진지하고 성실하게 협의에 임해, 일정 부분 이견을 좁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 장관은 정부와 보건의료노조가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뤘으나, 의료계 내부 또는 사회적 수용성을 위해 이해당사자 협의가 필요한 사항은 노동계와 협의만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일부 항목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 장관은 "보건의료체계에는 보건의료종사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재정을 분담하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과 의료기관, 그리고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타 의료인들 다양한 주체"가 존재한다며 보건의료노조에 "정부 입장을 다시 한번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에 따르면 정부와 보건의료노조는 총 22개 과제 중 17개 과제에서는 합의에 도달했다. 다만 5개 항목에서 합의에 실패했다.
권 장관 담화 직후 이어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코로나 현장에서 인력을 어떻게 운영할지, 감염병 전담병원 인력채용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새 기준 시행시점, 인력채용에 따른 보상 수준에 대해 더 이견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보건의료노조의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제한 사항에서도 정부가 노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정책관은 "개선 필요성에 동의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간호인력 수급 문제, 쏠림 문제를 고려하면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 측 입장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환자가 급증하면서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수가 지나치게 많아진 가운데, 한국의 열악한 간호 노동 환경이 간호사의 이직률을 높이고 병상 간호 질을 떨어뜨리는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정부는 아울러 공공병원 확충 요구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이 정책관은 "어느 지역에 어느 공공병원이 신축되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해달라는 노조 요구가 있었으나, 정부는 해당 지자체 의견도 받아야 하므로 당장 이를 확정해서 합의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는 파업 자제를 재차 요청했다.
권 장관은 "보건의료노조가 예고한 파업으로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원과 선별진료소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께 돌아간다"며 "파업을 자제하고 대화와 협의로 지금의 상황을 함께 해결하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에게는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얘기로 걱정을 끼쳐드려 매우 죄송하다"며 "정부는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단 중환자치료, 응급의료, 수술, 분만, 투석 등 파업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필수유지업무의 경우 해당 기능이 계속 유지된다며 우려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비상진료대책을 통해 응급센터 등이 24시간 비상진료체계로 유지되도록 하고, 병원급 기관의 평일 진료시간을 확대해 파업에 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다만 권 장관은 파업 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료기관을 방문해 달라"며 "소중한 치료의 기회가 더 필요하신 분들께 돌아가실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드린다"고 당부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예고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문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 인력 확대 등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예정대로 다음 달 2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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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가 장기간 이어진 간호사 인력 확충, 공공의료 기능 강화 등의 요구를 무시하다 이번 사태까지 이르렀다며 정부의 책임을 묻고,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난 1년 7개월 간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감염병 확산 방지에 사력"을 다해 왔으나 정부는 '덕분에 챌린지' 정도 외에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며 "원래도 만성적 과로에 시달린 노동현장에 과로와 위험이 더해졌다"고 비판했다.
여성단체는 이어 "더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버틸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과로없이 집중하여 일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 강도와 이를 위한 인력충원, 충분한 임금, 안정적 고용, 그리고 지속적으로 예고된 유행병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의료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9일에는 전국철도노조가 "보건의료노동자들에 대한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 언론의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의 현실은 지금도 보건의료노동자들을 의료현장에 갈아 넣고 있다"며 "‘환자를 돌보다 환자가 되는’ 비참한 현실에서 누구도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철도노조는 "공공의료 확충, 의료인력 확충, 주4일제 근무를 요구하는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은 ‘위드 코로나’와 ‘N차 대유행’을 대비하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착한 파업’"이라며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응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의료노동자의 희생이 진정 의미가 있으려면 상시적인 신종감염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료인력을 조속히 확충하고, 감염병을 전담할 공공의료체계를 보다 튼튼히" 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이제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아닌 제도와 시스템으로 극복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이어 "보건의료노조가 제시한 ‘공공의료 확충 강화 및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처우개선’ 요구 중 특히 ‘코로나19 치료병원의 인력기준 마련’,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전면 확대’, ‘PA간호사 등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되는 행위에 대한 해결 방안 마련’,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을 정부와 국회가 즉각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 밖에 언론노조, 금속노조, 서비스연맹 등 각종 노동단체와 정당 등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을 지지선언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며 9월 2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전북 시민단체들은 31일 전북도청 앞에서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단체는 전주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적용 중인 만큼 얼굴 모양이 그려진 판넬을 기자회견장에 세웠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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