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는 미군이 지난달 16일 UH-60L 블랙호크 헬기를 C-17 수송기에 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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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철군 완료를 선언한 가운데 미군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할 기회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군이 탈레반에게서 카불 치안을 책임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탈레반의 카불 통제권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면서 "(카불 함락 후)치안을 탈레반에 의존한 것은 미국의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이 지난 15일 해외로 도피하면서 카불의 치안은 미국과 탈레반의 예상과 달리 빠르게 붕괴했다. 가니의 도피로 평화적인 권력 이양 가능성이 사라지고 아프간 정부군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무너지자 미군 지휘부는 신속하게 탈레반과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협상에서 탈레반은 미군에 두 가지 옵션을 제안했다고 한다. 탈레반의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미군 중부사령관 케네스 맥킨지에게 "당신들(미군)이 카불을 장악해 치안을 책임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치안을 책임지도록 허용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카불을 장악해 통제권을 잡을지 아니면 탈레반에게 카불 치안을 책임지도록 할지를 두고 미국은 후자를 선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8월 31일까지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에서 카불 통제권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앞서 미군은 7월 2일 아프간 주둔 핵심 기지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기습 철수하면서 대사관과 카불 국제공항 경비를 위한 약 650명만 남기고 병력의 95% 이상을 철수시켰다. 백악관은 미국민 탈출을 위해 지난 14일 아프간에 총 5000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지만, 이 규모 병력으로는 카불 치안을 전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 사령관은 탈레반의 카불 통제권 제안을 거절하면서 대신 공항 통제권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WP는 전했다. 합의에 따라 미군은 자국민과 동맹국의 철수를 위해 8월 31일까지 카불 국제공항을 이용할 수 있었고,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이와 관련해 마크 티센 WP 칼럼니스트는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대피 기간 카불을 통제할 기회가 있었지만, 탈레반에게 넘겨주는 것을 선택했다"며 "이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지도자들은 미군보다 테러리스트의 손에 미국인과 동맹국의 안전을 맡기는 선택을 했다"며 "이는 지난 26일 카불공항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의 공격에서 13명의 미국인을 자살폭탄 테러범의 손에 숨지게 한 결정이고, 국가의 치욕"이라며 날을 세웠다.

WP에 따르면 당초 미국과 탈레반 모두 8월 31일까지 카불을 장악할 의도가 없었다. 아프간 정부군이 카불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가니 전 대통령의 도피 이후 일부 아프간 정부 고위 관료들이 탈출 대열에 합류하면서 카불은 빠르게 무정부 상태가 됐다.

WP는 무함마드 나시르 하카니 탈레반 사령관조차도 아프간 정부의 급격한 붕괴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카불 인근에 머무르며 지도부의 결정을 기다리던 하카니 사령관은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공공 재산과 공무를 혼란으로부터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고 카불에 진입해 한 시간 만에 도시를 장악했다.

하키니 사령관은 WP에 "카불 시내에서 군인이나 경찰관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카불을 이렇게 빨리 점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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