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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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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공문 온 날, 이철희도 왔다…송영길 '재갈법 고집' 꺾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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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이때까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을 시사했던 송 대표는, 이날 오후 "시간을 갖고 더 논의하자"며 입장을 급격히 선회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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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 원래 이런 사람들 아니지 않습니까.”

학계와 언론단체에서 ‘언론재갈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30일 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가 “시간을 더 갖고 논의하자”는 취지로 얘기하자,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이 거세게 항의하며 한 말이다. 이 발언이 나온 30일 밤은 당초 민주당 지도부가 언론중재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예고한 ‘디데이(D-day)’였다.

강경파 의원들은 특히 송 대표의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송 대표가 이날 오전만 해도 언론중재법을 “최소한의 조치”라고 지칭하며 강행 처리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지도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면 어떡하냐. 그동안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강행했던 의원들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수도권 초선 의원)는 말도 나왔다.

그간 송 대표는 고비마다 언론 인터뷰에서 “허위보도를 했다고 언론사 면허를 취소하는 건 아니잖으냐”(지난 26일, MBC 인터뷰)는 논리를 펴며 언론중재법 강행을 지휘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런 송 대표의 강경 행보를 그의 별명 ‘황소’와 연관 지어 “황소고집이 언론법에 꽂혔다”, “언론개혁 전사 이미지를 얻기 위한 황소걸음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송 대표는 끝내 강행 처리 대신 숙의 과정을 선택했다. 31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9월 26일까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송 대표의 ‘황소걸음’이 멈춘 이유로는 “국회의장과 유엔 공문 등 두 가지 돌발 변수가 영향을 끼쳤다”(당 관계자)는 분석이 나온다.



①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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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사진 가운데)는 언론중재법 갈등의 막판 중재를 주도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 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이 언론중재법 협의체 구성 등이 담긴 합의문을 교환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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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은 30일 언론중재법 상정을 요구하는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해 시종일관 “양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본회의를 개최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9~12월 정기국회 동안 내년도 예산안과 국정감사, 각종 민생 법안 처리 등 성과를 내야 하는 박 의장으로서는 “여야의 정면충돌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실제 국회 본회의 개최 무산 이후 민주당 내 강경파의 화살은 박 의장을 향했다. ‘언론중재법의 코디네이터’라 불리며 입법 전 과정에 관여했던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새벽 페이스북에 박 의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박 의장의 중재가 언론중재법을 멈춰 세운 유일한 이유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박 의장이 고집스레 양당 협상을 요구한 게 강행 중단의 한 원인이 된 건 맞다”라면서도 “그러나 국회의장의 중재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다. 다른 사정이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②유엔 공문…외통위원장 마음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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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두 번째)가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EU 대사관저에서 프란스 티머만스 EU집행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과 만찬을 하고 있다. 송 대표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중단한 데 대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공문이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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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내부에서 송 대표가 강행 처리를 중단한 이유로 유력하게 지목된 건 전날 민주당에 도착한 유엔의 공문이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산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OHCHR)에선 민주당에 언론중재법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에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는 지난 24일 비영리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에게 진정서를 발송한 데 따른 것이다. 송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이런 소식을 전하며 “국경없는기자회에서 발표한 성명과 비슷한 내용인데, 우리도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 내부에선 유엔 공문이 여권 내 대표적인 ‘외교통’인 송 대표의 마음을 돌렸을 거란 관측이 많다.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송 대표가 국제 사회의 우려를 먼저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냐”는 해석이다. 다만 유엔에 대한 소명 절차를 마친 뒤엔 송 대표가 결국 언론중재법 개정을 재추진할 거란 전망이 많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유엔에 언론중재법 진정서를 낸 단체(TJWG)는 우파 성향이 강하다”며 “유엔이 우리 측 의견을 요청한 것이니, 균형 있게 의견이 전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유엔 공문에 바뀌겠냐”…제3의 변수 추측도



일각에선 유엔 공문 외에 다른 변수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엔 공문 내용은 의견을 내라는 것 뿐인데, 이걸로 입장이 바뀐다면 이미 국경없는기자회 성명 때 바뀌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여권 고위 관계자)는 설명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전날 저녁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국회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이 수석이 20분 간 민주당 원내지도부를 만난 뒤로 강행 기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간 언론중재법 논란에 대해 침묵해 온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국회 논의 결과를 접한 뒤엔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국회에서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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