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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오만한 해외학술지 '갑질'…오죽하면 해적사이트까지[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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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술지 '네이처' 홈페이지의 구독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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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 일반인들도 한 번쯤 들어 본 유명한 국제학술지들입니다. 학자들은 이들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게 평생의 꿈입니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국제 공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2014년 기준 996개 출판사가 8000여종의 학술지를 출판하는데, 특히 엘스비어(네덜란드), 와일리 블랙웰(미국), 테일러앤프랜시스(영국), 스프링거 네이처(독일) 등이 빅4로 불리웁니다.

◆ 유명세 이용해 고액 구독료·통구독 갑질

문제는 이들 학술지들이 독점력을 이용해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로부터 논문 게재료와 출판비를 받는 것은 물론 대학ㆍ도서관ㆍ연구기관 등 구독처들로부터도 연간 10조원(2015년 기준 10조5000억원)이 넘는 거액의 구독료를 챙기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구독처들이 낸 구독료가 무려 1801억원에 달합니다. 매년 물가인상률보다 높은 7~8%씩 구독료를 인상합니다. 논문을 게재할 때 저작권까지 넘겨야 하는 노예 조항 때문에 학자들의 수입은 없고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빅4 출판사가 독차지하는 불합리한 구조입니다. 이들은 구독처들에게 자신들이 발행하는 모든 전자저널에 대한 빅딜(통구독)을 강요하고 수십억원의 구독료를 거둬갑니다.

서울대가 올해 엘스비어 한 곳에만 27억원을 구독료를 내는 바람에 일부 다른 저널의 구독을 포기해야 했다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해외 저널에 실리는 논문들은 대부분 국가연구개발(R&D) 재정이나 공공ㆍ민간 연구기금이 투입된, 즉 사실상의 공공재임에도 이를 구매하기 또다시 엄청난 세금을 써야 하는 것은 모순이자 낭비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적으로 오픈액세스, 즉 최소한 공공연구 논문의 경우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무료로 공개해야 한다는 운동이 활발합니다.

◆ 한국도 오픈액세스 법제화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교육부가 나서서 내년 중 입법화를 통해 논문을 포함한 연구 성과ㆍ과정을 개방하는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과기정통부가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겼구요. 구독처-해외 저널간 협상 전담 기관을 지정해 구독료를 낮추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무료 공개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검토 중입니다. 또 무료 공개 논문들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생각이랍니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ㆍ불법 복제 금지를 규정한 기존 법제와 충돌되는 부분이 있죠. 또 기득권을 쥔 출판사들도 양보하려 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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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저널 논문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이-허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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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면서 새로운 과학기술이나 인문학적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논문 원문'을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취미가 '논문 찾아 읽기'인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죠. 논문은 다소 딱딱하고 어렵긴 하지만 연구 결과와 의도, 배경, 과정, 의미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사실 어느 저서보다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세금이 들어간 공공연구논문을 구독하기 위해 거액의 세금을 쓰고 있는 이중 지출의 현실은 말이 안 되죠. 조속히 오픈사이언스 정책이 현장ㆍ전문가 의견 수렴과 이해관계 조정을 거쳐 법제화돼 국민들의 정보 기본권이 보장되고 예산 낭비를 막길 바랍니다.

◆논문 구해보고 싶을 땐?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이 해외 저널이나 국내 학술지 등에 실린 연구 논문을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외 유명 저널들은 일반인들의 정기 구독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첫째, 해외 저널들과 구독 계약을 맺고 있는 대학교나 공공도서관의 논문 열람실을 이용하십시오. 대부분 일반인들의 열람도 허용한다고 합니다. 둘째 해외 저널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1건당 50~100달러 안팎의 돈을 내고 구매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셋째,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오픈액세스 논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ㆍ학회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출판 전 프리프린팅 논문이 공개돼 있기도 하고, 출판 후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료로 공개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논문 해적 사이트인 '사이허브(sci-hub)'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출신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이라는 과학자겸 해커가 개설한 학술지 논문 무료 다운로드 서버입니다. 그는 미국 법원에 제소돼 배상명령을 받고 서버를 폐쇄당했지만 주소를 옮겨가며 계속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범죄라는 비판도 있지만 호응도 큽니다. 2016년 사이언스의 설문조사에서 1만1000명의 연구자 중 88%가 사이허브를 이용하는게 잘못이 아니라고 답했답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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