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가계대출 옥죄기 효과
4대 은행, 중금리 대출 비중 ↑
고신용자 파이는 매달 감소세
서울 관악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박선현(48·가명)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전셋집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1500만원을 연 5%대 이자로 빌렸다. 가게 운영자금을 위한 빚이 꽤 있던 터라 은행 대출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박 씨는 예상과 달리 비교적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고신용자가 아니다 보니 인터넷은행이나 저축은행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지인의 조언을 듣고 찾아간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 놀랐다”면서 “은행에서 신용평가시스템(CSS)를 고도화해 중신용자임에도 소득상환능력을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전 금융권에 강력한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퍼지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중금리 대출 비중을 빠르게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고신용자 위주 영업을 펼치던 과거 모습과는 상반된 행태다.
당국의 옥죄기에 여신 영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지면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있는 중금리 대출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중금리 신용대출(4~6%) 비중은 전월(11.2%)보다 1.5%포인트 늘어난 12.7%를 기록했다. 비중이 9%였던 연말과 비교하면 3.7%포인트 증가했다. 1년 전만 해도 4대 은행의 중금리 대출 비중은 5.2%에 불과했다. 특히 이 기간 5~6%대로 나간 대출이 1.3%에서 4.25%로 세 배 넘게 확대됐다.
반면 고신용자 대출비중은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달 4%대 미만 신용대출 비중은 80.4%로 한 달 동안 1.3%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7월에는 취급한 모든 신용대출의 91.1%가 4% 미만의 고신용자 대상 상품이었다.
고신용 대출비중 확 줄고, 중신용 대출은 쑥 ↑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 곳은 국민은행이었다. 국민은행은 4%대 미만 신용대출 비중이 1년 전 89.5%에서 71.3%로 줄어 가장 낮다. 이어 ▲하나은행(79.8%) ▲신한은행(81.4%) ▲우리은행(89.2%)순이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의 중금리 대출 비중도 7.3%에서 20.9%로 급증했다. 이는 두 번째로 많은 신한은행(10.8%)의 두 배 수준에 해당한다. 증가세는 신한은행이 3.5%에서 10.8%로 늘어 가장 가팔랐다.
은행들의 이같은 행태는 통상 경기가 부진하거나 리스크 관리가 시급해도 고신용자 대출을 유지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9년 초 실물경기가 악화하고 연체율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에도 시중은행들은 중금리 대출을 먼저 줄였다. 당시 기준 중금리 대출 비중은 금리 구간별로 2~3%씩 감소했다.
시중은행의 여신영업 전략이 바뀐 건 금융당국의 부채관리 기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급등의 원인에 고신용자의 ‘빚투(빚내서 투자)’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말에도 일부 은행이 전문직군에 연봉 2.7배까지 대출하는 상품을 만들다 금융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고소득자에 속하는 전문직 대출상품의 한도를 줄여왔다. 신한은행은 지난 10일 최대 2억원이었던 전문직 전용대출 상품 대출 한도를 연소득 100%로 줄였다. 하나은행은 연초 의사·한의사 대상 ‘닥터클럽대출’과 변호사 대상 ‘로이어클럽대출’ 등의 기본한도를 1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내리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기 수요 증가로 가계부채 축소를 위해 연소득 한도를 일괄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연봉이 많았던 고소득자 대출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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