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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다시! 제주문화](19) 삼성혈서 목관아까지…제주 원도심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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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 따라 걸으며 제주를 더 잘 이해하는 시간 '원도심 심쿵투어'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솔직히 털어놓자면 아름다운 제주 자연경관을 두고 누가 제주 원도심을 걷겠느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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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문화의거리 조형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시 이도1동 삼성혈 문화의 거리에서 세워진 조형물. 일명 '걷는 사람'이란 뜻의 김종철 작가의 작품 '호모워커스'(Homo Walkers)다. 2021.9.19



조선왕조 600년 역사가 서린 서울의 경복궁과 한양성,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등과 비교해 제주 원도심 문화기행은 비주류 여행이라 치부했던 것.

하지만 2년 전 제주시가 야심 차게 마련한 '제주 원도심 심쿵투어'가 조금씩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참여자와 완주자가 늘어나고 있다.

제주의 젖줄 산지천을 따라 삼성혈과 제주성, 동문시장을 거쳐 제주목관아까지 제주의 예스러움을 간직한 이곳.

관광객만을 위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잘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은 제주 원도심 이야기!

제주 원도심 심쿵투어 1∼2코스 핵심만 추려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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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원도심 심쿵투어 포스터
[제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제주 문화의 거리를 걷다

제주시 이도1동 삼성혈 문화의 거리.

사람 발 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일명 '걷는 사람'이란 뜻의 김종철 작가의 작품 '호모워커스'(Homo Walkers)다.

제주 원도심의 문화적 유산을 여유롭게 거닐며 즐기라는 메시지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작품의 기운을 듬뿍 받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삼성혈'에서부터 여행은 시작한다.

삼성혈로 들어가는 첫 대문인 '건시문'(乾始門)을 지나면 두 팔을 벌리고도 감싸 안기가 어려운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다.

수령 500년 넘은 곰솔을 비롯해 팽나무, 녹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50여 종 650여 그루가 삼성혈 전체를 뒤덮고 있다.

아침 햇살이 나뭇잎, 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신성한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삼성혈은 고·양·부(高·梁·夫) 삼성(三姓)의 시조인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세 신인(神人)이 이 곳에서 솟아나 나라를 세웠다는 탐라국 개국신화의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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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성혈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 삼성혈의 모습. 2021.9.19



언뜻 보면 황당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역사를 반영'하는 '신화'(神話)의 속성을 이해하고 잘만 해석한다면 옛 과거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마찬가지로 삼성신화 역시 이곳 제주에 권력이 등장하고 '탐라'라는 나라가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혈을 둘러본 뒤 다시 삼성혈 문화의 거리를 따라가면 '광양당' 터가 나온다.

표지석이 있을 뿐이지만 이곳에도 신비로운 전설이 등장한다.

옛날 제주도는 뛰어난 인물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명당을 수없이 많이 가진 땅이었다.

제주에서 세상을 뒤엎을 인물이 나올 것을 두려워한 중국 황제가 호종단(胡宗旦)이라는 풍수사를 보내 명당의 혈(穴)을 없애라고 명했다.

제주의 주요 명혈을 거의 끊은 호종단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가는데, 분노한 광양당신(廣壤堂神)이 매로 변해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키고 호종단을 수장시켰다고 한다.

바로 그 지점이 지금의 차귀도 앞바다이다.

'차귀도'(遮歸島)란 섬 이름도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걸 막은 섬'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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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광양당 터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 광양당 터. 2021.9.19



이를 가상하게 여긴 고려 조정에서 광양당신에게 광양왕이라는 작위를 봉하고 매년 향과 폐백을 내려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곳 광양당 터가 한라호국신(漢拏護國神) 광양왕(廣壤王)의 사당이 있던 자리다.

광양당 터에 이어 조금만 걸어가면 웅장한 성벽이 나타난다.

제주성(濟州城)이다.

제주성은 제주도심을 흐르는 하천인 산지천과 병문천을 각각 동쪽과 서쪽 자연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 판 못)로 삼고 그 안쪽에 성벽을 쌓아 만들어졌다.

나중에 성을 확장하면서 산지천 위로 성담이 지나가게 됐는데 하천의 북쪽과 남쪽 수구(水口, 물을 흘려보내는 곳) 위에 지어진 건물을 각각 죽서루(竹西樓), 남수각(南水閣)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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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지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성지 모습. 2021.9.19



남수각이란 지명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곳 남수각은 1555년(명종 10) 발발한 을묘왜란 당시 제주성을 포위한 왜적을 기습 공격해 무찌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성 대부분은 일제에 의해 헐려 사라졌고 그 일부만이 복원돼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인 1925∼1928년 산지항 축조 공사 당시 일제는 성곽의 돌을 단순히 바다 매립 골재로 사용해버렸다.

소중한 우리나라의 유적이 함부로 훼손된 아픔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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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벽화거리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남수각 하늘길 벽화거리'(사진 위)와 공덕동산 벽화길(사진 아래) 모습. 2021.9.19



◇ 활기 넘치는 원도심 심쿵투어

지금부터는 좀 더 여행다운 기분을 내며 재밌게 즐겨보자.

산지천 위를 지나는 다리 '오현교'를 지나면 '남수각 하늘길 벽화거리'(남수각 산책길)가 나온다.

남수각 주변에 조성된 남수각 산책길은 골목골목마다 정겹고 아기자기한 예쁜 벽화들로 가득하다.

관광객은 물론 도민에게도 알려진 사진 찍기 좋은 사진 촬영 명소다.

남수각 산책길뿐만 아니라 나중에 소개할 김만덕 기념관 뒤쪽으로 이어진 공덕동산의 벽화길은 산지천의 옛 추억을 품은 사진을 보며 잠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남수각 산책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제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인 '동문시장'으로 이어진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코로나19 위기에도 상인들의 외침과 물건을 흥정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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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지천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산지천변 모습. 2021.9.19



관광객들은 저마다 제주 특산물 하나씩을 손에 들고 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서민들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문시장은 1945년 해방과 함께 형성됐다.

제주성 서문에 있는 서문시장이 서쪽에서 성안(城內)으로 들어오는 물산의 집결지였다면, 동문에 있는 동문시장은 함덕·신촌 등지에서 들어오는 근교 농업 농산물의 집결지였다.

동문시장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이제는 제주 상업의 중심지이자 관광중심지로 발전했다.

동문시장에선 철마다 귤,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등 제주 특산물은 물론 갈치와 방어, 고등어, 딱새우 등 각종 수산물을 판매하고 택배 배달까지 원스톱 서비스해준다.

동문시장 하면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저녁 무렵 시작하는 제주동문시장 야시장에서는 전복김밥, 흑돼지 오겹말이, 제주당근 핫도그, 수제떡갈비, 흑돼지 함박스테이크, 땅콩아이스크림 등 제주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푸드트럭이 관광객 발길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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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복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복신미륵(福神彌勒)인 '동자복'의 모습. 2021.9.19



활기 넘치는 동문시장을 돌아본 뒤 산지천을 따라 내려가면 조선 시대에 나눔을 실천한 제주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만덕(金萬德·1739∼1812년)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김만덕기념관', 만수사(萬壽寺) 옛터에 자리하고 있는 복신미륵(福神彌勒)인 '동자복'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산지천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제주사랑방과 책방으로 거듭난 전통가옥 고씨주택, 금성장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여관 건물을 재생해 만든 문화공간 '산지천갤러리', 칠성통 쇼핑상가 등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다.

이어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북초등학교를 지나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에 다다르게 된다.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양한 민속놀이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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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가득한 제주목관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목관아 모습. 2021.9.19



특히 목관아 제일 안쪽에 위치한 망경루에선 우리나라 보물 제652-6호인 '탐라순력도'를 테마로 한 체험 공간도 조성돼 있다.

탐라순력도는 조선 숙종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도내 각 고을 순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화공(畵工) 김남길에게 그리게 하고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만든 총 43면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실물은 아니지만, 영상물을 통해 당시 제주의 생생한 생활상과 역사를 이해하고 조명해 볼 수 있다.

4∼5시간 동안 걸으며 탐라국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오랜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원도심 심쿵투어.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도 가족과 함께 걸으면 제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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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관아 모습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2일 촬영한 제주목관아 모습. 2021.9.19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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