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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강대국 무시, 땀과 열정으로 극복"…누리호 개발 10대 결정적 순간[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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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연, 지난 30년간 주요 개발 과정 회고 동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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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추석 연휴입니다. 그러나 중대사를 앞두고 노심초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음달 21일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의 첫 발사를 앞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개발자들이죠.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으로 도약합니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력도 부족했지만 미국의 미사일지침 등 강대국들에 밀려 '우주 개발'은 꿈도 못 꿨죠. 1993년 조그마한 과학로켓으로 시작해 30년 만에 300t급 우주 발사체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미국, 일본 등 기존 우주 강대국들은 한국을 무시하며 돈을 준다고 해도 기술 이전을 거부했습니다. '맨바닥'에서 출발한 항우연 기술진은 배울 데가 없어 미국 워싱턴DC 항공우주박물관 같은 곳에 찾아가 전시된 로켓 엔진들을 보며 스케치를 했습니다. 겨우 러시아 정도가 막대한 대가를 받고 '견학' 수준의 기술 연수를 시켜 주는 등 악조건의 연속이었지만, 집념과 열정, 도전으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항우연은 지난 30년간 우주 발사체 개발 과정에서의 주요 사건을 '10대 결정적 장면'으로 정리해 18일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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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걸음은 소박했다.

한국은 1993년 6월4일 1단 과학로켓인 KSR-I 발사에 성공해 대한민국 우주발사체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1989년 항우연 설립 4년 만의 일이었죠. 이후 1997년엔 추력이 두 배로 늘어나고 최고 고도도 4배 높아진 KSR-II 발사에 성공했고, 2002년엔 국내 최초 액체 추진 로켓인 KSR-III 발사를 성공했습니다. 비록 8t급의 작은 로켓이었지만 한국은 이를 통해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2.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수립

모든 계획은 '꿈'과 목표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죠. 또 정부의 사업은 법이 제정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체계가 갖춰져야 제대로 진행됩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에게 '우주 개발'은 먼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1996년 5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이 확정됐고, 2005년 5월엔 우주개발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이 완성됐습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6월엔 우주 개발을 위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위성을 독자적 발사체로 발사한다는 원칙을 담아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항우연은 "다른 선진국보다 늦은 일이었지만 개발을 위한 열정은 더 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3. 나로우주센터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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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우주 개발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초기지인 '우주센터'를 가진 전세계 13개국 중의 하나입니다. 2001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를 최종 부지로 선정해 2009년 준공했습니다. 우주센터는 단순히 로켓을 세워 놓고 발사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 로켓 제작, 실험 등이 진행되는 복합 시설입니다. 특히 이번에 누리호 발사를 위해 건설된 발사대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초고압, 극저온, 청정 기술, 공기내의 수분과 분진 함량 및 크기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기술, 질소ㆍ헬륨 등을 초고압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 등을 국내 독자개발했습니다. 한국은 2013년 나로호 발사 과정에서 발사대 운용 기술을 완벽히 확보했습니다.

4. 나로호 발사

2013년 1월 30일은 한국이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린 날입니다. 나로호는 기술 습득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 제작됐죠. 1단부는 러시아가 2단부는 한국에 만들었지만, 2번의 실패와 4번의 발사 연기 끝에 결국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나로호 개발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기반으로 누리호 등 독자적 우주발사체 기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등 우주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이 나로호 개발을 통해 축적됐습니다.

5. 누리호 개발 착수.

누리호 개발은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따라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201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10년 이상인 데다 보유한 전문 인력 수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 하다"는 결론이 났고, 결국 우리 기술로 1.5t급 실용위성을 700km의 지구 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3단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6. '맨땅'에서 시작한 액체 엔진 개발

로켓의 '심장'인 엔진은 우주 발사체 개발의 핵심이죠. 나로호 개발 당시 30t급 액체 엔진 개발 기술을 습득한 항우연 개발진들은 이를 바탕으로 75t 액체 엔진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5월 1.5초 연소 시험, 2016년 7월 145초 연소 시험에 각각 성공합니다. 로켓 엔진은 초당 1000kg의 엄청난 양의 추진제를 공급해 연소시키는 복잡하고 예민한 놈입니다. 항우연은 회전체를 이용해 추진제의 압력을 높여 고압의 가스를 분출하는 '터보펌프식' 액체엔진 개발을 완수했습니다. 가장 큰 기술적 난제 연소불안정 현상 극복 위해 10개월간 밤낮없이 매달린 결과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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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상에 이런 물건 없다' 추진제 탱크 제작 성공.

추진제 탱크는 로켓 구조물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엄청난 무게의 추진제를 견뎌야 하지만 알루미늄 합금의 두께는 2~3mm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얇고 가벼운 소재를 탱크로 사용하는 것은 지상에는 없다고 합니다. 항우연 개발진들은 용접했다가 불량이 나서 공정 개선 연구를 하고, 다시 또 용접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수 용접 공법을 자체 개발해 누리호의 추진제 탱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도공의 혼을 불어넣어야 했다고 합니다.

8. 시험 발사체 성공

75t급 엔진 개발을 마친 항우연은 2018년 11월 시험 발사체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 발사체의 '심장'인 로켓 엔진을 마침내 완성합니다. 세계 7번째 중형 액체 엔진 개발국이 된 거죠. 이 순간은 또 누리호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발사를 앞두고 최종 점검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돼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국이 자체 개발한 우주 로켓은 무사히 하늘로 향했습니다.

9. 최고 난이도 '클러스터링'도 정복

누리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합니다. 목표대로 1.5t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으려면 추력 300t의 로켓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75t 엔진 네개를 묶어 300t의 추력을 낼 수 있는 1단부를 만들어야 하죠.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습니다. 엔진 4기가 정확한 정렬돼 있어야 하며, 똑같은 추진력을 내야 합니다. 엔진 과열에 대비한 단열기술. 정교한 방향 제어 및 조립도 필수였죠. 항우연 기술진은 몇차례 시험 연기 등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발사 일정도 5월에서 10월로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1월 드디어 클러스터링한 1단부 연소 시험에 성공했고, 3월까지 3연속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누리호의 추진 기관의 성능 검증을 모두 마치는 순간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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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단형 누리호 등장

지난 6월 1일 나로우주센터에는 3단부가 모두 조립된 누리호가 처음으로 등장해 발사대(엄빌리컬 타워)에 거치됐습니다. 개발자들에겐 지난 10년간 겪은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죠. 총 37만개의 부품들이 수만시간 동안 극한 조건의 우주 환경 실험을 거쳐 조립돼 마침내 발사를 앞둔 마지막 순간에 이른 것입니다. 항우연은 이날 발사대의 기능을 점검하는 인증 시험을 진행했고, 지난 8월 말엔 다시 한 번 누리호를 발사대에 세워 최종 점검 절차인 WDR(Wet Dress Rehearsal)까지 마쳤습니다. WDR이란 액체 추진제를 주입ㆍ배출하면서 이상 여부를 점검하는 최종 준비 절차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 직전에 하는 '웨딩 드레스 리허설'처럼 발사 전에 로켓을 액체 연료로 적셔 본다는 뜻이죠.

지난 10년여간 로켓을 개발해 온 항우연 기술자들에겐 누리호가 마치 자식과 같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우주 시대로 이끌어 갈 누리호가 부디 남해의 푸른 하늘을 꿰뚫고 무사히 날아 오르길 기원합니다. 지난 5000년간 한반도를 짓눌러 온 약소국의 서러움도 조금은 줄어들 겁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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