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과제참여율' 제도 악용해 인건비 착취 등 횡포 심각
"청년 과학자, 자유롭고 안정된 연구 환경 보장해야"
10월4~11일 6개 부분 수상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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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하루 10여시간씩 연구에 몰두해도 고작 100만원 안팎을 받아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나라 노벨상 수상자들처럼 20~30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겠냐."
지난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청년과학기술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한 청년 과학자의 '일침'이었습니다. 올해도 노벨상의 시즌이 개막됐습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등은 오는 10월4일(현지시간)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부문 순으로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아쉽게도 올해도 한국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고 있죠. 특히 일본은 24명의 과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한 반면 한국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뿐입니다. 이날 '대화'도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이 청년과학자들과 소통하겠다고 주최한 행사였지만 주제는 자연스럽게 노벨상으로 흘러갔습니다.
먼저 김원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 교수가 나서 한국의 현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떨어지는 편이 아닙니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의 경쟁력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현재 한국의 과학, 기술 경쟁력은 각각 3위, 13위이며, 이는 전체 국가경쟁력 순위 23위보다 높습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연구개발투자비 비율이 전세계 2위이며, 인구 천명당 연구자수는 세계 1위입니다. 그러나 노벨상과 관련된 과학기술 인프라는 취약합니다.노벨상 수상자수ㆍ인구 백만명당 노벨상 수상자 수(29위), 법률이 혁신을 지원하는 정도,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 산ㆍ학간 지식 전달 정도 등은 중위권(25~30위)에 그치죠.
특히 한국이 노벨상 위원회ㆍ수상자 등이 얘기하는 '수상 조건'에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실패를 개의치 않고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펀딩제도, 지금껏 누구도 하지 않았던 연구 분야 투자, 기초과학에 대한 충분한 투자 등이 바로 그 것입니다.
세계의 주요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20~30대, 늦어도 40대에 이룩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상을 받고 있습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26세때인 1905년 발표한 광양자 이론으로 1921년 노벨상을 받았고, 193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행열역학, 불확정성원리 등 양자역학을 창시한 업적을 세웠을 때가 고작 25세였죠.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학원생 연구자들은 '정곡'을 찔러 임 장관을 당황시켰습니다. 이준영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석박사 통합과정생은 대학원생들을 연구자로 제대로 대우해 달라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그는 "연구자가 아닌 학생이라고 인식하면서 연구실 내에 수직적인 문화가 생긴다"면서 "학생의 틀로 대학원생들을 보면서 휴가나 급여에서 차별을 당연시한다. 어엿한 연구자로 대접하면서 기존 과학자들처럼 안정적 급여를 주고 창의적 연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지훈 포스텍(POSTECH) 화공 석박사 통합과정생은 한국 연구실의 수직적 문화, 즉 '갑질'이 가능한 근본 원인을 꼬집었습니다. 그는 "연구 지도 측면에서는 교수의 학문적 권위에 바탕을 두고 건설적인 논의를 하면 되지만, 인건비나 출퇴근, 휴가 사용, 진로까지 교수에게 걸려 있다 보니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기 힘들다"면서 "물론 수평적 관계를 맺는 교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연구실내 소통과 학생 주도 연구를 방해하는 큰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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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교수들이 마음대로 책정해 줄여 버리는 '횡포'가 여전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현재 국가연구과제에서 학생 인건비는 학부생 100만원, 석사 과정생 180만원, 박사 과정생 250만원이 '하한선'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이 '과제참여율'이라는 제도를 핑계로 학생들에게 줄 급여를 70% 수준으로 삭감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1%만 주는 교수도 있습니다. 과제참여율이란 한 연구원이 다수 연구 과제에 참여했을 때 각 과제로부터 받을 인건비의 비율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인데, 교수들이 학생들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준영 석박사 통합과정생은 "법적 정의를 분명히 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김수지 카이스트 대학원 부총학생회장도 "아마도 노벨상을 탄 유명한 젊은 연구자들은 생활비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10여시간씩 연구에 몰두하는데, 한달에 100만원 안팎을 받고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건비 하한선을 높이거나 과제참여율 하한선을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 과제를 선정하도록 하고, 행정 업무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임 장관은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기존 정책을 설명하면서 잘 시행하거나 보완하겠다는 취지의 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과제참여율 문제가 지적되자 다소 당황하더군요. 임 장관은 "학생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교수들이 상한선이라고 여긴다는 것이 놀랍다. 과제참여율 문제도 평상시에 몰랐던 문제"라며 "기존 제도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결론은 청년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독창적ㆍ창의적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론 매년 추석때 한국인 노벨상 수상 후보자의 이름이 밥 상위에 오르고 두근거림 끝에 결국엔 영광의 수상자를 맞는 시간이 오길 바랍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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