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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주유 대란' 영국, 흉기 난동까지…브렉시트의 예견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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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주유 대란이 엿새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주유소들이 기름이 다 떨어져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남아 있는 주유소에선 새벽부터 주유하려고 기다리는 차들이 수백 미터씩 줄을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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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28일 영국 밀턴 케인즈의 한 주유소 앞 도로에 차량들이 줄을 서서 주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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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수인력에 기름 우선"…사재기에 흉기 난동까지

운전자들만 애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나 간병인도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 애를 먹고 있는데요. 한 간병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현지시간 28일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필요할 때 간병인을 보낼 수 없다"며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걱정했습니다. 한 호스피스 업체는 집에서 요양하는 환자를 돌보려면 "급히 기름이 필요하다"며 호소하는 글을 이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영국의사협회와 공공서비스노조(Unison) 등에서도 필수 인력에 우선 주유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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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27일 영국 런던 외곽 콥햄의 한 주유소에서 한 여성이 빈 페트병에 기름을 채우고 있다. 〈사진=영국 스카이뉴스 캡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소셜미디어엔 한 여성이 빈 페트병에 기름을 받아 사재기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올라왔고요. 기름을 넣겠다고 기다리던 운전자들끼리 새치기하지 말라면서 몸싸움을 벌입니다. 지난 27일엔 주유를 대기하던 한 남성이 다른 운전자를 흉기로 위협하고, 위협받은 운전자는 이 남성을 차로 밀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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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27일 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에서 새치기 시비가 붙어 흉기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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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이후 노동력 부족…예견된 '기름 대란'

때아닌 기름 대란은 대형 화물트럭(HGV) 운전사가 부족한 탓입니다. 현재 영국에서는 연료 등을 운송하는 트럭 운전자 10만 명 정도 부족한데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EU 회원국 국민들이 이전처럼 무비자로 영국에서 일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영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운전사 역시 늘었고요.

급기야 지난 23일 영국의 대형 정유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주유소 일부가 연료 수송이 어려워져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00년에 트럭 운전사들이 정유사를 막는 시위로 연료 위기를 한 차례 겪었던 영국인들은 불안한 나머지 이번에도 사재기에 나선 것입니다.

■"임시 비자론 역부족"…영국 정부, 여전히 낙관론

영국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군인 150명가량이 이번 주말쯤 연료 수송을 도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외국인 트럭 운전사 5천명에게 크리스마스 이브 전까지 3개월간 임시 비자를 내줘 영국에서 일하게 한다는 계획인데요. 그러나 이것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때 영국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했던 폴란드인 야콥 파이카 씨는 28일 로이터에 "영국인들이 3개월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것을 도우려고 가족과 떨어져 이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애당초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로 예견된 노동력 부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최근 몇 달간은 코로나19 자가 격리자까지 늘어 슈퍼마켓 매대가 텅 비어버렸고요. KFC나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식료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운송 인력뿐 아니라 축산 농가, 가금류 농장 등도 손이 달립니다. BBC는 28일 "농부들이 크리스마스 때 칠면조가 부족할 것을 우려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주유 대란이 나아지고 있다며 낙관론을 펴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28일 "상황이 개선되는 걸 보고 있다"면서 "운전자들이 공황 구매를 중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29일 영국 더타임스는 "공황 구매가 진정되더라도 주유소가 연료 재고를 채우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앞으로 몇 주 동안은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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