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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한국, '꼰대식' 연구 문화 없애야 노벨상 탄다[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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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이 비교 분석한 주요국가와 한국의 연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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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노벨상 시즌이 개막됐습니다. 스웨덴 국립과학아카데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등은 4일 오후 6시30분(한국시간) 생리ㆍ의학상을 시작으로 오는 11일까지 6개 부문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일본은 25명이나 되는 수상자(과학기술 분야 24명)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했을 뿐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선 한국의 연구 문화 때문이라는 반성을 많이 합니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는 1970~80년대부터 본격화돼 연륜이 짧기도 하지만 후진적 연구 문화 때문에 노벨상의 기준인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업적을 내놓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국책 학술ㆍ연구 지원 총괄 기관인 한국연구재단(NRF)은 최근 노벨상을 쓸어 가는 미국, 독일, 일본, 이스라엘 등의 연구 문화와 한국의 현실을 비교해 장ㆍ단점과 개선점을 제시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재단은 실패를 두려워 하는 연구 문화 극복, 장기ㆍ안정적 연구 몰두 환경 조성, 대학 연구의 자율성ㆍ독립성 확대, 민간 주도의 연구 문화 구축 등을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로 자리매김 하는 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해선 한계에 부딪힌 한국 연구실 특유의 '꼰대식'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세계 과학기술 선도 '미국'

미국은 연구자나 연구 기관의 자유, 자율, 독립을 최우선하는 가치 덕분에 세계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있죠. 70여년 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설립을 기초한 보고서 'Science - The Endless Frontier'의 핵심 철학은 '연구의 자유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각종 압력단체로부터의 자유, 단기적 성과 산출에서의 자유, 중앙집권적 기관의 독재로부터의 자유 등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제5의 문명 발상지'로 불리는 실리콘밸리의 창의ㆍ혁신ㆍ도전적 연구 문화와 뛰어난 업적을 이끌어 냈습니다. 연구 실패를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인식하고, 창조적 실패라면 얼마든지 용인하는 문화가 장착됐습니다. 이로 인한 실리콘밸리의 도약은 과학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유니콘 기업의 수에서 나타납니다. 지난 6월 기준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숫자를 보면 미국이 374개로 압도적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중국 124개, 영국 25개, 인도 21개, 이스라엘 18개, 브라질 12개, 한국 10개, 일본 6개 등에 그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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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 '일본'

일본은 연구 문화는 장인 존중ㆍ한우물파기ㆍ축적 등 3개의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개항 때부터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연구 문화를 중시하는 네덜란드 보어 연구소의 '코펜하겐 정신'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특유의 모노즈꾸리(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존중하는 제조업의 전통)을 결합했죠.

그러나 일본은 1995년 이후 대학에서 연구자에게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반적 경비' 시스템을 경쟁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경쟁적 경비 체제'로 전환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안정적ㆍ장기적 연구비 부족에 따라 창의적 연구가 감소하고 단기 성과를 따내려는 연구 경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본 과학계에서 창출되는 논문들의 양적ㆍ질적 수준이 저하되고 국제적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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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챔피언 독일

독일은 강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이 연구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산ㆍ학ㆍ연 클러스터간 연구 협력 문화가 강하죠. 독일 아헨공대에 산학협력 연구소만 260여개가 있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독일은 분권ㆍ개방ㆍ맞춤형 연구를 통해 유럽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민간의 창의성을 존중하면서 정부는 혁신을 지원하는 역할로 선을 긋고 있으며, 중앙집권ㆍ폐쇄적 독점ㆍ획일화 등 기존의 플랫폼에 도전하는 연구 문화를 장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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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창업 경제 '이스라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로 글로벌 수준의 벤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한 대표적 국가로 꼽힙니다. 후츠파, 즉 도전ㆍ혁신이라는 벤처기업의 창업 정신을 중시합니다. 유태인 특유의 나이ㆍ계급ㆍ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논쟁을 통해 진리를 찾는 '하브루타'가 정착돼 있습니다. 또 내수 시장이 작아 창업 초기부터 미국 등 세계 시장을 공략합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스타트업(4600여개)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수도 '텔아비브'는 세계 창업도시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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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두렵고 '성과만 중시' 한국

한국은 1950년대 이후 가장 급속한 경제 성장ㆍ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세계 10위권 국가에 진입한 성과를 자랑합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소ㆍ부ㆍ장 산업기술에 대한 신속한 대응,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ㆍ5G 개발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러나 연구 문화는 아직 미흡합니다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국 연구진들은 '축적' 보다는 '흐름'을 중시합니다. 변화되는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데는 성공적이지만 한 우물 파기를 통한 독창적ㆍ창의적ㆍ독보적 연구 성과를 내긴 힘들죠. 즉 노벨이 유언에 남긴 '가장 중요한 발견'은 어렵다는 겁니다. 여기에 한국 연구자들은 실패하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단기ㆍ성과 중심의 연구 생태계로 인해 장기ㆍ안정적 연구가 어렵죠. 또 정부가 연구를 주도하면서 유행가식 연구가 진행되고 만간의 창의적 발상이 빛을 보기 어렵습니다.

재단은 실패에 관대한 연구 문화와 사회적 생태계 조성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계에 만연한 '리스크 회피' 중시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또 장기ㆍ안정적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 아카사카 교수가 30년간 연구 끝에 청색 발광 다이오드(LED)를 발견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학들이 자율ㆍ독립적인 연구를 장려하고 안정적인 연구비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 창의ㆍ혁신적 R&D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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