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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빈농의 아들, 13세부터 공장일…이재명, 정치 15년만에 대선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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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캐 먹던 빈농의 아들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의 길 택해

대선·경기지사 거치며 전국구 정치인 성장

”대한민국 위해 역량 발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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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 올림픽 핸드볼경기장에서 서울 합동연설회 겸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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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최종 선출된 이재명(57)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스스로를 “가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한 ‘흙수저’ 정치인”이라고 표현한다. 특정 계보나 조직이 없고 국회의원 경력도 전무한 비주류 정치인이지만, 정치 입문 15년만에 여당 대선 후보로 우뚝서게됐다. 이 후보는 “개혁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산나물 캐 먹던 빈농의 아들·소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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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1964년 12월 경북 안동에서 5남 4녀 중 일곱번째로 태어났다. 청량산 자락에 위치한 예안 도촌리 산골 마을에서 5km를 홀로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고, 산나물을 캐 먹으며 굶주림을 채웠다고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부모는 아들이 태어난 날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그가 6세 때인 1968년 학교 등록을 위해 생년월일이 필요하자 역술인을 찾아가 생일날짜를 새로 정했는데 그게 음력 10월 23일이다.

이 후보와 여덟 식구는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남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 후보는 13살부터 성남 공단 일대 공장들을 전전하며 일당 400원을 받으며 일했다. 이 후보는 2018년 펴낸 에세이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한때 대학물을 먹었다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고 공장에 나가게 했으며, 공장을 그만두고 쉬기라도 하면 무조건 아버지의 리어카를 밀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소년공 이재명’의 첫 직장은 집 근처 목걸이를 만드는 이름 없는 가내수공업장이었다. 월급 1만원을 받고 황동선을 납과 염산으로 땜질했는데, 1년뒤 사장의 야반도주로 세달치 월급을 떼였다고 한다. 이후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리는 사고를 당한 뒤 손목이 뒤틀린 ‘굽은 팔’이 됐다. 이 사고로 6급 장애인 판정을 받아 군 복무에서 면제됐다.

공장에서 겪은 지속적인 폭력과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한 길은 공장 관리자가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이 후보는 ‘고졸 우대’ 조건에 맞추려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공장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대입을 준비해 1982년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서울대에도 갈 수 있는 점수를 취득했지만 중앙대가 학점에 관계 없이 3년 등록금을 면제해줬고, 월 20만원의 생활비 지원 혜택을 제안한 것에 끌렸다고 한다. 이 후보는 “졸음을 이기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고, 압정이 두어 개 박힌 채 잠들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 판·검사 대신 택한 인권변호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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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가 1989년 사법연수원 졸업식에서 모친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이재명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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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1986년 두 번째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한 1987~88년은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성적으로는 3할 안에 들어 판검사도 노려볼 수 있었지만,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같은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천·광주시 노동상담 소장 등으로 활동했다. 청년 변호사 이재명이 음대 졸업생이던 부인 김혜경씨를 처음 만난 것도 이 때다. 이 후보는 “꿈 많던 음대생이 온갖 모진 일을 마주해야 하는 정치인의 아내로 살기까지 무수히 많은 감내의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아내에게 말로 못 다할 미안함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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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지난 1990년대 중반 한 토론회에서 찍힌 사진. /이재명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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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와 2008년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삼수(三修) 끝에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열린 시정(市政)’을 내걸며 시장실을 전면 개방했다. 또 지방 정부 최초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대규모 부채 청산에 나섰다.

2010년대 중반 들어 한국 정치권의 무상 논란의 한 가운데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년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 등으로 대표되는 ‘3대 무상복지 정책’을 실시했다.

◇ 19대 대선·경기지사 거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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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2017년 초 탄핵 정국 당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한 이재명 후보(왼쪽)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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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2016년 말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변방 장수’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두터운 소셜미디어(SNS) 지지층을 확보한 이 후보는 촛불 시위에서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하는 등 선명성을 강조하며 시원하다는 의미에서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10% 후반대를 기록하며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경쟁했다.

이 후보는 19대 대선 경선에서 최종 34만 6747표를 얻어 21.2%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그는 당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개시치고 괜찮았다고 본다”고 했다. 여권에서는 그가 향후 정치 활동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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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 강제입원'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에 처해졌다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해 8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나와 지지자들과 인사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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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계 출신으로는 20년만에 민선 7기 경기도지사에 56.4%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취임 직후 기본소득제를 추진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여야 대다수가 선별지급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전체 도민들을 상대로 1인당 10만원을 지원금을 지급했다. 또 ▲경기도 계곡 내 불법 점유시설물 강제철거 ▲민간의료기관 수술실CCTV설치 사업 등을 통해 ‘한다면 하는 행정가(governor)’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지사 본인과 지지자들이 “이재명은 합니다”를 외친 것도 이즈음부터다.

◇ “실적으로 능력 증명… 대한민국 위해 역량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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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가 지난 7월 1일 온라인을 통해 대통령 선거 출마를 하고 있다. /이재명 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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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한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곤란을 겪었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직후 날개를 달았다. 1년 가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7월 1일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내 지지 기반이 미약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광주·전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상대 후보들을 압도하며 일찌감치 ‘이재명 대세론’을 굳혔다.

이 후보는 출마의 변에서 현 대한민국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위기 근본 원인을 불공정·양극화로 진단하며 ‘공정성 확보’ 중요성 강조했다. 또 ‘강력한 경제 부흥책 시행’ 역설하며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이른바 ‘억강부약’ 통한 ‘대동세상’ 실현 의지 재차 강조했다.

이 지사는 “정치적 후광, 조직, 돈, 연고, 아무 것도 없는 저를 응원하시는 것은 성남시와 경기도를 이끌면서 만들어 낸 작은 성과와 효능감 때문일 것”이라며 “실적으로 증명된 저 이재명이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10일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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