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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특파원시선] 태국 경찰이 불러낸 '오징어 게임' 그리고 반정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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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폭력 모방 우려에 냉소적 반응…"오징어 게임 메시지를 봐야" 지적

코로나로 벼랑끝 내몰린 '절망' 투영 반정부 시위…'오겜' 메시지와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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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최근 태국 언론에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관한 뉴스가 실렸다.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드라마에 등장한 '달고나' 게임이나 녹색 트레이닝복의 인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찰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하고 드라마에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해 실제 생활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만큼, 부모들이 감독을 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징어 게임은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18세 이상 등급이라는 점이 보여주듯 폭력적 장면이 다수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학부모 단체나 학교가 우려를 표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경찰이 나선 것이 의아했다.

오징어 게임을 모방한 폭력 사태나 범죄가 있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현지 언론은 태국 네티즌들이 경찰 발표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태국에서 폭력으로 가장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당사자가 경찰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급된 게 두 달 넘게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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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시내에서 진행된 총리 퇴진 촉구 반정부 시위. 2021.9.12
[AFP=연합뉴스]



특히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로 현지 언론에 종종 보도되는 딘댕(Din Daeng)이라는 방콕 내 도심 지역이 주목받는다.

이곳의 시위는 지난해 태국 전역을 흔들었던 반정부 시위와 결이 다르다.

당시엔 학생들이 중심이 됐고, 태국에서 금기시돼 온 군주제 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딘댕의 반정부 시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생활고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공간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진단이다.

이러다 보니 최루탄·고무탄·물대포와 시위대의 새총과 폭죽·사제폭탄이 충돌한다.

시위 참여자 다수가 먹고살기 힘든 서민층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무능하다며, 즉각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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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댕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젊은이들
[방콕포스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일간 방콕포스트가 최근 시위 참여자 3명과 한 인터뷰에는 이들의 절망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20살 벤(별명)은 2019년에 가난 때문에 직업학교를 그만뒀다.

막노동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는 학교 중퇴 뒤 온라인에서 먹거리를 팔기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그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부적절한데다 실업까지 겹쳤다. 무엇보다 미래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벤은 왕실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뻿치(별명·20)도 학교를 중퇴한 뒤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다 코로나19 사태로 해고됐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됐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돈을 벌고 있지만, 넉넉지 않다.

17살인 A는 직업학교 학생이다. A의 부모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업을 잃고 이런저런 허드렛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A는 "아무런 미래도 볼 수 없다. 난 거창한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최소한의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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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프라깨우 사원 밖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뚝뚝 운전사. 2021.10.12
[EPA=연합뉴스]



그러나 1년 반 이상 지속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을 겪으며 이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절망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오징어 게임을 언급한 지 수 일 뒤 같은 신문에는 이 드라마와 반정부 시위를 함께 조명한 칼럼이 실렸다.

칼럼니스트 아띠야는 청년들이 대부분인 반정부 시위대에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을 사용하는 경찰이 폭력의 위험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드라마가 전세계 수백만 명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생명을 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가기 위해 더 공정한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절망이 요즘 많은 사람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절박함이라고 말했다.

아띠야는 또 이런 감정은 젊은이들에게 매일같이 거리로 나가 경찰과 맞서게 하는 분노나 불만과 비슷할 것이라고 봤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13년 전 구상할 때만 해도 낯설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투자사와 배우들에게 모두 거절당했거든요. 코로나19로 사는 게 더욱 힘들어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면서…(중략) 공감대와 현실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한국일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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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조치로 문을 닫은 방콕 시내 상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 2021.7.12
[EPA=연합뉴스]


태국은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가장 부유한 1%가 국부의 67%를 차지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영국 가디언지)와 같은 표현도 종종 나온다.

지난 2019년 태국의 한 경제연구소는 태국 기업 지분의 약 36%가 단 500명에게 집중돼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태국의 최저임금은 하루 300바트(약 1만700원) 정도다.

방콕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커먼' 수로 양옆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목조 가옥이 줄지어 선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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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도심의 한 고급 백화점.
[방콕=김남권 특파원]



반면 뉴욕 뺨칠 정도로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방콕 시내 백화점에서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수퍼카만 세울 수 있는 전용 주차장이 있는 나라가 또 태국이기도 하다.

태국에는 '하이소'(HiSo)라는 단어가 있다.

상류 사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에서 비롯된 단어로, 부유층을 통칭하는 태국식 표현이다.

한국 사회의 '재벌'(Chaebol)과 약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존에도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던 이런 불평등은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태국 경제가 급격히 추락하면서 더 심해졌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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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방콕 시내 상점 앞에서 야채 장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2021.3.16
[EPA=연합뉴스]



여유가 있는 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자산이 줄었다고 해도 그리 크게 티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이들에게 1년 반 이상 지속된 코로나와 그로 인한 실업 등은 재앙이 자명하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은 우리 사회의 상황과 '패배자들' 사이에 커져만 가는 절망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야만 한다"고 아따야는 지적한다.

그의 말대로 맥락 없이 등장한 경찰에 의해 '소환'된 오징어 게임으로, 잠시 잊고 지내던 태국의 '고질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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