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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남정호의 시시각각] 나라 지키는 오징어게임과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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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한류가 한국 안보에 도움 줘"

주한미군 철수 무산에 크게 기여

정치가 쓸데없는 간섭하지 말아야

중앙일보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한·미관계를 보다 굳건히 하는 힘을 발휘한다. 사진은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오징어게임. 제공=넷틀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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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한류로 야단이다. BTS,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대박을 치더니 최근 새 국내 드라마 '마이 네임'까지 넷플릭스 TV 부문 세계 3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5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 관해 주제 발표를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소프트 파워란 개념을 창시한 인물로 노벨상에 국제정치학 분야가 있다면 진작 받고도 남을 거물이다.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경제력과는 별도로 한 국가가 갖는 매력·신뢰성 등에 의해 발휘되는 힘을 뜻한다. 주목해야 할 나이의 주장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한·미 관계와 같은 전통적 국제 관계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거였다. 그가 든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추진했던 주한미군 정책이었다. 트럼프는 2019년 한국이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며 군사비를 더 부담시키려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이 커지면서 여기에 영향 받은 미 의회가 트럼프의 정책에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갤럽 조사 결과 "한국에 호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미국인의 비율은 2003년 46%에서 2018년 77%로 15년 동안 31%포인트나 늘었다. '오징어 게임' 같은 한류가 나라를 지키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한류 덕에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호감이 확 늘었지만, 여전히 이웃 나라 일본의 상대는 못 된다는 점이다. 같은 2018년 2월 갤럽 조사에서 "일본을 좋아한다"고 응답한 미국인은 87%에 달해 한국보다 10%포인트나 앞섰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없이도 일본은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성공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일본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집중적인 대미 공공외교 덕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물론 실망할 건 없다. 지금처럼 한류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한국에 대한 호감은 일본을 넘어설 수 있고, 이것이 소프트 파워로 작용해 우리 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게 확실하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할 점은 한류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 설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장애물은 다름 아닌 정치권의 쓸데없는 간섭이다. 외국 언론은 획기적인 한류의 성장 비결 중 하나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꼽는다. 실제로 당국은 한류 육성을 위해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방향까지 잘 잡았다. 지난해 7월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신한류 진흥정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천명한다. 지금 갈림길에 선 한류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부의 지혜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얼마 전 청와대가 BTS를 대했던 행태를 보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참으로 공허하게 들린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하며 BTS를 동반했다. BTS는 뉴욕 일정 첫날, 문 대통령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 모멘트’ 개회 연설에 찬조 출연하고 유엔 측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곤 바로 김정숙 여사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참관에 동행했다. 둘째 날에는 문 대통령의 ABC 방송 인터뷰에 동참했고, 셋째 날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뉴욕 한국문화원 행사에 참석했다. 출입국 일정까지 보태면 족히 4~5일을 정치권의 부름에 쓴 것이다.

고려대 연구진에 따르면 3일에 걸친 BTS의 2019년 7월 서울 공연의 경제적 효과는 92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BTS가 문 대통령 수행 대신 서울에서 공연했다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거뒀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정치권은 한류 스타들을 오라, 가라 하지 말기 바란다. 그게 한류를 육성하고 우리 국방을 튼튼히 하는 지름길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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