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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김남국의 아포리아]개혁 대 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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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머니투데이

김남국 교수


정치가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을 알려고 할 때 정치평론은 주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정치가의 행동이 지향하게 될 슬로건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핵심 슬로건으로 자신들이 '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책의 결과를 통해 미래 어느 시점에 입증돼야 할 개혁을 현재 관점에서 사실로 전제해서 실패로 드러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개혁진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개혁을 가로막는 방식에는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개혁의 양을 증폭해 시민들의 피로감을 불러오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안이 개혁의 우선 과제인지 불분명하게 만듦으로써 개혁을 좌초시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50대 개혁과제, 100대 개혁과제를 말하면서 모든 개혁을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점진적인 개혁의 피상화를 통한 우파적 방해로서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인가를 하는 수동적 문제해결 구조를 일상화하는 것이다. 개혁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끊임없이 말하면서 개혁의 수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 결국 개혁의 껍데기만 남김으로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장황하게 앞선 사례와 경험을 말하며 시간을 끄는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

세 번째 방식은 개혁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적 방해로서 가장 근본주의적이고 강경한 노선을 견지하며 어떤 타협도 거부했다는 명분만 남긴 채 개혁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에서는 좁은 지지 기반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인 노선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결국 선명한 이상을 무기로 상대방을 반개혁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로서 현실을 파괴한다.

다시 말해 개혁의 양적 증폭이나 점진적 개혁 또는 개혁의 급진화를 주장하며 고군분투해도 대부분 반개혁적 상황으로 귀결되는 정치의 비극을 생각하면 개혁을 자신의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반개혁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관과 객관이 불일치하고 오직 결과로 평가받는 정치의 세계에서 미래를 알 수 없지만 그 미래로 가야 하는 정치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게 낫다.

개혁의 길이 성공하기 위해 이른바 '개혁세력'들은 개혁의 과정과 목표에 대해 2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적 주체의 형성은 위로부터의 기획이 아니라 현재의 질서가 갖는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시민적 연대를 바탕으로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수단으로서 관념화한 법의 적실성을 비판하는 기준은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한 공통의 감각이다.

둘째, 개혁의 방향은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자유를 포괄하는 자유의 확장이며 자유를 위한 발전이자 자유를 통한 발전이어야 한다. 국가의 성장이나 GDP(국내총생산) 등의 단일지표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기준들이 개발돼야 하고, 특히 코로나19(COVID-19)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고유한 회복력이 축소되고 플랫폼 의존적 연결이 극대화하는 현실에서 연결이 끊어질 경우를 대비한 회복력을 설계에 넣어야 사회적 파국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자유의 확장과 공공성의 고양이라는 두 축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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