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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세상서 가장 작은 집 마당의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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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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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인 충남 아산의 맹사성 고택에 살던 조선의 청백리 맹사성(孟思誠·1360~1438)도 자신의 집 마당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사람들은 ‘맹씨행단’이라고 부른다. ‘행단(杏壇)’은 공자가 학문을 설파하던 자리가 은행나무 그늘이었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은행나무 그늘의 별칭으로 불러온 이름이다.

맹사성이 심어 키운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맹씨행단 쌍행수(雙杏樹·사진)’라고 부른다. 600년 동안 나무는 거대한 크기로 솟아올라 앙증맞다 할 정도로 작은 맹사성 고택을 큰 집으로 느끼게 한다. 한창때에 나무는 높이 35m, 줄기 둘레가 9m에 이르는 매우 큰 나무였다. 지금도 나무 앞의 안내판에는 같은 수치를 기록해 놓았지만, 높이와 줄기 둘레 모두 그보다 작다. 특히 줄기는 썩어 부러져 나가서 둘레를 측정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게 됐다. 줄기 자리가 텅 비어 허전한 느낌을 주긴 해도, 원줄기 곁에서 새로 무성하게 돋은 맹아지 때문에 거목의 기품은 여전하다.

맹사성이 손수 심은 나무는 또 있다. 고택 뒤편으로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 중간에 있는 구괴정(九槐亭) 느티나무가 그것이다. 맹사성을 자주 찾아오던 황희, 권진 정승이 함께 세상살이를 놓고 고담준론을 나누던 자리에 정자를 올리고 그 앞에 세 정승은 제각기 느티나무를 세 그루씩 심었다. 느티나무를 뜻하는 괴(槐) 자를 써서 구괴정이라도 부르게 된 건 그때의 느티나무 아홉 그루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 일곱 그루는 이미 수명을 다해 사라졌다. 그나마 두 그루가 남았지만, 줄기나 가지가 죄다 부러지고 일부만 남은 줄기가 옆으로 누운 채 세월의 풍진에 힘겨워하고 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심은 나무가 흔적으로 남아 옛사람의 자취를 애면글면 증거하고 있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고, 그들과 더불어 살았던 조선 최고의 청백리 맹사성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에 담긴 참지도자의 뜻을 자꾸만 되새겨보고 싶은 계절이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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