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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월경빈곤 해소하는 작은 기업들의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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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월경컵을 처음 목격했을 때 드는 생각이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월경컵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는 크다. 무엇보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월경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월경컵 시장도, 그것과 관련한 용품 시장도 아직은 협소하다. 월경빈곤을 없애기 위해 몇몇 사회적기업, 스타트업이 뛰어들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 힘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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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컵이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관련 시장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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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국의 17세 소녀 아미카 조지는 신문을 보고 생리대를 사지 못해 결석하는 여학생이 13만7000명에 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곧장 "누구나 누려야 할 학습권을 침해하는 월경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freeperiods(월경 해방)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였다. 이때부터 월경빈곤(Period Poverty)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영국에선 놀랄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영국 정부는 중·고등학생, 대학생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월경용품에 부과하던 탐폰세도 폐지했다.

월경빈곤이란 월경을 하는 동안 경제적인 문제로 월경용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이 문제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다. 뉴질랜드에서는 9~13세 여성 12명 중 1명이 월경용품을 구하지 못해 학교를 결석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이후 "향후 3년간 각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월경용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학 내에 무상으로 월경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자판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3월 23일 월경용품 배포 예산으로 14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에선 월경빈곤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인 2016년 '깔창 생리대' 사건이 터졌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과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했다는 사연이 알려진 거다. 생리대를 사지 못해 일주일 동안 결석을 하고 집에 누워있었다는 사연 또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큰 후폭풍을 몰고 온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몇몇 지자체는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바우처 제도도 도입됐다. 이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가난을 증명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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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여전히 월경빈곤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 청소년이 많다.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에 따르면 비용이 부담돼 월경용품 구입을 망설인 적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이 74.7%에 이른다. 그들은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사용 개수를 줄이거나(74.0%), 공공시설에 비치된 생리대를 사용하거나(11.4%), 휴지 또는 수건으로 대체한다(0.9%)고 답했다.

개인차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여성은 10대 중반부터 약 35년간 월경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 5~7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이 평생 사용하는 생리대는 1만5000여개다. 이걸 돈으로 환산해보자. 기준은 유한킴벌리의 좋은느낌 좋은순면 울트라 날개 중형(36개입)이다.

이 제품의 평균 가격은 1만914원(한국소비자원 참가격 10월 15일 기준)으로 1개당 303원꼴이다. 이를 1만5000개 산다고 계산하면 여성 생애주기 동안 생리대를 사는 데 450만여원이 필요하다. 물가인상 변수까지 감안하면 500만원 안팎의 돈을 생리대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이런 비용이 부담된다고 생리대를 제때 교체하지 않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월경빈곤 문제를 마냥 놔둬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품이 있는데 바로 '월경컵'이다. 일회용 생리대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잘 관리하면 길게는 1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일회용 생리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유해성 물질 검출, 환경오염 문제와도 거리가 멀다. 월경컵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시장은 턱없이 협소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시장은 2400억원 규모(2020년 기준·수입 제외)에 달하지만, 월경컵 생산액은 2억원에도 못 미친다. 국내 제품보다 비중이 더 높은 수입 월경컵까지 더해도 6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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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월경컵 시장은 해마다 5.3%씩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더디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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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월경컵 시장에 대기업이 아닌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가치를 품은 이들은 자본주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월경컵·생리대·월경팬티 등을 판매하는 월경용품 전문스토어 '월경상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 초 UV 월경컵 살균소독기 리사(Li sa)를 출시한 싱크블랭크의 김동민 대표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솔루션을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제시하겠는가"라면서 "결국엔 작은 기업들이 힘을 보태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뼈를 깎는 노력을 의미 없게 만드는 일들이 수두룩해서다. 값싼 중국산 월경컵 소독기를 들여와 그럴듯하게 마케팅하고, 효능을 부풀려 팔아치우는 업체들이 활개를 치는 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 탓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좋은 기업들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시장에서 퇴출된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는 세계 월경컵 시장이 해마다 5.3%씩 성장해 2026년에는 9억6300만 달러(1조1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 정부도 사회적 가치를 투입해야 할 이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월경을 단순히 여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터부시하는 탓에 더디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는 꿈틀거리고 있는데 우리는 주춤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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