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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환경정책의 ‘보이지 않는 손’… 화석연료 기업들, EU 로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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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5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열린 유럽연합(EU)-서부 발칸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크란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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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화석연료(석유·가스 등) 기업들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유럽연합(EU)의 핵심 관계자들과 수백차례 접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일본·호주 등은 유엔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평가보고서를 자국에 유리한 내용으로 채우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제사회의 환경 정책에 부적절한 영향력이 개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지구의 친구들 등 4개 비정부기구의 연구자료를 인용해 영국의 브리티쉬페트롤리엄(BP), 노르웨이 에퀴노르 등 6개 석유·가스 기업들과 화석연료 관련 무역기구들이 2015년 이후 EU의 기후·에너지 법안을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들과 568차례 회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 석유·가스업체에는 장관 출신들을 비롯해 70명의 전직 공무원들이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버 러드 전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장관은 현재 에퀴노르 자문위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존 소어스 전 영국 비밀정보부(MI6) 부장은 BP의 전무이사다. 닉 호튼 영국 국방참모총장도 2017년부터 BP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NGO들은 이같은 화석연료 기업들의 활동은 환경단체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전직 정부 관계자들을 동원한 로비와 컨설팅, 싱크탱크 활동 등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비정부기구들은 영향력 있는 정부 관계자들이 없고 EU 관계자들을 만나도 단체 면담 등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친구들 측은 “EU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화석연료 기업 관계자들이나 로비스트들을 만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후 대응 정책을 둔 개입은 기업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BBC는 최근 유엔에 제출된 의견서 3만2000건을 분석한 결과 사우디·일본·호주 등 일부 국가들이 유엔의 IPCC 평가보고서를 자국에 유리한 내용으로 채우기 위해 각종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 국가는 화석연료 퇴출에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탈탄소 노력의 핵심은 화석연료를 적극 줄이고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란 보고서 결론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인 호주도 ‘석탄발전소 폐쇄가 필요하다’는 내용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산 석탄의 주요 수입국인 일본도 석탄이나 가스화력발전소가 9~12년 이내에 폐쇄돼야 한다는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IPCC 보고서를 둘러싼 각국의 압력은 국제사회의 기후정책 결정 과정에 보이지 않은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다만 IPCC 측은 “우리의 작업은 모든 부분에서 로비를 방지하도록 설계됐다”며 일각의 우려에 선을 그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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