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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 심사를 마치고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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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리는 1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관객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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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15일 막을 내렸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섹션에는 여러 부문이 있는데 나는 그중 '선재상' 부문의 심사위원을 맡아 작품들을 심사했다. 와이드 앵글 경쟁부문에 초청된 한국과 아시아 단편 중 최우수 작품을 선정하는 심사였다. 사실 난 제안을 수락하고도 심사 정보만 알고 있었을 뿐, 선재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부산에 내려가서,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님과 카페에서 만나 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재상'이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인 정희자 관장이 후원하는 부문임을 알게 됐다. 선재라는 이름은 1990년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 아들 선재의 이름이었다.

모든 사물과 사람의 이름, 그리고 명칭에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낯설게 다가왔다. 비록 지금은 대우그룹과 선재라는 유형의 형체가 사라졌을지 몰라도 이름이 남는다는 것은, 곧 존재가 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 작품을 관람할 때 마다 '선재상'이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와 무게를 실감하며, 어떤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맴돌았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와선 이따금 일면식 없는 그를 떠올렸다.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나아가 조금 더 유의미하게 이 상이 수여되기를 바랐다.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선재상'과 비슷한 이름의 상이 하나 더 있다. 2017년 신설된 '지석상'(Kim Jiseok Award)이다. 이 상은 아시아영화의 성장과 새로운 신인감독의 발굴과 지원에 헌신해온 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정신과 뜻을 기억하기 위한 상이다. 여전히 많은 영화인들이 그를 추억하고 애도하며 작품의 크레디트에 그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한다. 크레디트에 적힌 'Memorial'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그의 물리적인 생이 끝났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로 한 사람의 생이 끝난다는 것은 언제일까 생각한다.

다소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떠올리며, 누군가를 기리는 행위가 존재를 지속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영화란 '1초에 24번의 죽음'이라는 글을 좋아한다. 그 의미는 1초에 24번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아니다. 24프레임으로 이루어진 필름이 영사될 때, 프레임별로 정지돼 있는 각 이미지들이 움직임을 갖고 죽음에서 삶으로 이행된다는 의미다. 멈춰 있는 이미지를 이어 붙여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영화처럼 물리적인 생이 끝났을지라도 생전에 남긴 영향, 그리고 그에 대한 회자와 애도가 흔적을 계속 만들어 낸다면 생이 정지된 것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움직임을 갖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선재상', '지석상'을 비롯하여 지나간 누군가의 이름을 어디에서고 발견한다면 잠시나마 그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역시 언젠가의 유한한 삶을 지났을 때 내 이름이 어떻게 남겨질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존재하게 될지에 대해 생각한다.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보다는, 누군가 추억하고 기릴 의미가 있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삶을 가치 있는 선택과 충실한 헌신들로 채워 나가야겠지만 말이다.

한국일보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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