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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조연경의행복줍기]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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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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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자전거길이 잘돼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 산책로와 상행선 하행선의 구별이 잘돼 있고 주변 자연풍경도 빼어나다. 아치형 나무길 사이로 언뜻언뜻 쏟아지는 햇살, 박하향을 뿌리며 살랑거리는 바람, 노래하듯 출렁이는 강물. 자연은 늘 축복처럼 반갑게 손을 흔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조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목줄 없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에게 줄을 매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개는 안 물어요”다. 물론 다 그렇게 무심함을 보이는 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던 사람이 개를 보고 겁이 나서 주춤거리면 바로 목줄을 바싹 당겨 잡고 “괜찮아요”라고 큰소리로 안심시키는 개 주인도 많다.

이제 겨우 두발자전거에 입문한 어린 아들을 위해 꼼꼼하게 자전거길 규칙을 알려주는 아빠가 있는 반면 “네 마음대로 타도 돼.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 갈 거야” 하며 어린 아들의 보호의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이기적이고 어이없는 아빠도 있다. 자전거길에 들어서는 순간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잘 타는 법이 아니라 잘 넘어지는 법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났거나 균형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게 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넘어져야 한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반대편 선으로 들어가면 마주 오는 자전거와 부딪쳐 충돌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길에서 추월할 때도 그냥 휙 지나가지 않고 ‘지나갑니다’라고 뒤에서 꼭 사인을 주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다섯 명 지나갑니다’, 정확히 일행의 수까지 알려주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길이 만만치 않은 건 자전거 타는 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잘 타는 프로와 아직 서툰 아마추어가 섞여서 안전하고 즐겁게 어울리려면 양보와 배려와 응원이 꼭 필요하다.

또한 자전거길에서 다양한 복병을 만날 수 있다. 복병을 피하는 방법은 ‘무심코’를 경계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날벌레가 얼굴에 달려든다고 무심코 손을 들어 쫓다가는 균형이 깨져서 넘어질 수 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강물이 아름다워 무심코 시선을 던지다 미처 보지 못한 나무와 부딪칠 수 있다. ‘생각 없이 무심코’는 자전거길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매우 위험하다. 이렇듯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의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김훈의 ‘자전거여행’ 중)

자전거길은 또 다른 삶의 학습 현장이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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