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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동자동의 초조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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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올해 초 정부는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조성하는 사업을 발표했다. 총 건설호수 2410호 중 공공임대 1250호를 지어 쪽방 주민이 대다수인 세입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인근의 쪽방 주민이 제외된 게 아쉽지만, 정부가 주거를 모두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집을 원하나? 반빈곤 운동단체 홈리스행동에서 제작한 동영상을 보면, 쪽방 주민들은 상당히 자세하게 현재 주거지를 묘사하고, 개발 후 살고 싶은 집을 구상한다. 취미 생활을 하거나 친구들과 노닥거리려면 잠자는 곳 말고 최소한 방 한 칸이 더 필요하다. 음식을 조리할 싱크대, 수세식 변기와 세면대,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야 한다. 단지에는 운동시설과 의료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서로 답답할 때 와서 차라도 한 잔 나누면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휴게실”도 필요하다.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사람이 누가 죽어 나가는지도 몰라요.” ‘부동산’부터 떠올리는 탓에 잊고 있던 ‘집’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새삼 떠오른다. 맞다. 편리할 때, 환할 때, 내 감정을 나눌 누군가가 지척에 있을 때, 나는 내 집이 좋다고 느꼈다.

동자동 공공개발을 맹렬히 반대하는 토지·건물 소유주들은 어떤 집을 원하나? 정부가 사업을 발표한 2월부터 현재까지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이들에게 집은 곧 자산이다. 정부가 감정평가를 거쳐 정당한 보상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지만, 외지에서 거주하는 대다수 소유주에게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개발은 자산증식의 가능성을 좁힌 악재일 뿐이다. 이들 중 일부는 ‘빈곤 비즈니스’로 쪽방에서 수익을 챙겨왔으면서도 정부 결정에 “제2의 용산참사”를 운운한다. 버려진 땅, 무너져가는 건물에서 위험을 감당해온 주민들, 이들 곁을 묵묵히 지켜온 활동가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도 암울하다. 세입자의 주거권 수호보다 소유주의 “재산권 침해”에 과몰입하고, 공공개발을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처사로 매도하고, 서울시의 복지지원사업으로 노숙인이 몰려 정부에 “강제수용” 당했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편다.

자신을 ‘피해자’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기실 ‘가해자’임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주거는 어쩌다 배타적 생존 수단이 되었을까? 저서 <내 집에 갇힌 사회>에서, 김명수는 중산층 중심의 주택 수요자 운동이 부상한 역사를 깊이 있게 추적했다. 얼핏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거전략은 금융개방에 따른 투기적 가계금융 지위의 부상, 중산층 소유자 중심의 주거 자본화 전략, 분배 문제에서의 소유권 정치의 부상 등이 복잡하게 맞물린 결과이다. 구조적 압박에 대한 사적 대응으로 자리잡은 생존주의 생활양식은 “공공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단절’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제약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격렬한 저항을 부추긴다.” 동자동 곳곳에 나부끼는 붉은 깃발, 청와대 국민청원, 삭발 시위, 장관 집 1인시위, 로비, 소송 준비 등등, 소유주들의 격렬한 저항은 모두가 연루된 개발 공화국의 민낯이다.

새로운 저항은 자산화된 삶을 종용하면서 종국엔 개인에게 리스크를 전가하는 체제를 문제 삼고, 배타적 생존주의와 각자도생을 벗어날 사회적 기반을 함께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막말로, 동자동의 소유주들이나 (나를 포함한) 중산층이 자산증식의 열망을 불태운다 해서 자신이나 제 자식이 남욱, 정영학, 김만배가 되길 바랄까?

지난주 동자동 주민협동회 사무실에서 만난 쪽방 주민들의 표정엔 초조함이 가득했다. 정부의 확약을 받으러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까지 찾아갔으나 2021년 말 지구지정에서 2030년 사업준공까지의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진 자를 중심으로 민의가 형성되는 공론장에서, 이들은 제 비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외에 달리 세인의 시선을 붙잡을 방도가 없다. “바퀴벌레 없는 곳에서 살다 숨을 거두고 싶습니다.” 사실 만만한 꿈이 아니다. 사업이 발표된 2월부터 현재까지 이미 17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매년 이삼십명이 사망하는 동자동에서는 남은 자들이 떠난 자의 유품을 정리하고,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이들의 구상이 소상하고 진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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