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 위법’ 확정…1년9개월 만에 찾아온 뒤늦은 승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육군 시한인 26일까지 항소장 제출하지 않아

인사기록은 ‘강제 전역’에서 ‘정상 전역’으로

국방부, 트랜스젠더 군 복무 연구용역 착수 계획


한겨레

변희수씨가 지난해 3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 복무 중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받은 고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 전역’ 처분이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27일 확정됐다. 피고인 육군참모총장은 법무부의 항소 포기 지휘에 따라 항소 시한인 전날까지 대전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군은 변 전 하사의 인사기록을 ‘강제 전역’에서 ‘정상 전역’으로 정정할 예정이다. 변 전 하사가 ‘심신장애’를 이유로 강제전역된지 1년9개월만이다.

동료 군인들 지지 속 성전환 수술 받았지만, 군은 강제 전역 처분


2017년 3월 육군 하사관으로 군 복무를 시작한 변 하사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군 병원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를 받은 변 하사는 성별 정정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고, 부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소속 군단장의 국외 휴가 허락을 얻은 변 하사는 2019년 11월 타이(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변 하사는 성전환 수술 뒤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가고자 희망했다.

그러나 부대 복귀 뒤 받은 의무조사에서 변 전 하사는 음경 상실과 고환 결손에 따른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됐다. 법원에 낸 성별정정 허가 신청 결과를 기다리던 변 하사는 군에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심사 연기를 권고했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2020년 1월22일 전역심사를 강행해 변 전 하사의 전역을 결정했다. 강제 전역 결정이 내려진 뒤 불과 2주 뒤 법원은 변 전 하사의 법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했다.

“나라 지키게 해달라” 호소했지만…재판 미뤄진 사이 세상 떠난 변 하사


변 전 하사는 강제 전역 결정 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별 정체성을 떠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얼굴과 실명을 내건 변 전 하사의 바람에 군은 응답하지 않았다. 군은 2020년 7월 변 전 하사의 인사소청을 기각했다. 군내 절차로는 군 복무로 복귀할 길이 사라진 변 전 하사는 8월11일, 육군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한겨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그해 7월 “변 하사의 전역은 일할 권리와 성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역심사 연기를 권고했던 인권위도 같은 해 12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역 처분 취소를, 국방부 장관에게는 제도 정비를 권고했다. 그러나 군은 “전역 처분은 법규에 의거한 적법한 행정처분이다.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작 재판은 피고인 육군참모총장이 답변서 제출을 미루면서 소송 제기 반년이 지나도록 변론 기일이 열리지 않았다. 4월로 잡힌 첫 변론기일을 한 달 가량 앞둔 3월3일 변 전 하사가 충북 청주시의 집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법원 “전역 처분은 위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제도 개선 과제로


변 전 하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유족들은 소송수계(소송 중단을 막기 위한 절차)로 변 전 하사의 싸움을 이어가기로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연대의 목소리가 모였다. 4200여명의 시민, 22명의 국회의원, 전수안·김지형 전 대법관 등이 전역 처분 취소를 요청하는 탄원서·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마침내 지난 10월7일, 대전지법 행정2부(재판정 오영표)는 변 전 하사의 강제 전역 결정이 위법한 처분이라고 선고했다. 변 전 하사가 성별정정을 이미 완료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을 기준으로 심신장애를 판단한 전역 처분이 “더 나아가 판단할 것 없이”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빼면 완벽한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변 전 하사가 얻은 값진 승리는 과제도 적잖게 남겼다. 현행 군인 선발 기준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미 복무하고 있거나 복무를 희망하는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지침·규정 등은 없다. 군 역시 변 전 하사의 전역을 결정할 당시 ‘성전환 문제와는 무관하다. 성전환을 했다는 이유로 전역을 시키는 규정은 없다’며 규정의 미비를 인정한 바 있다. 법원은 복무 중 성전환을 한 군인의 복무가 가능한가는 “국가 차원에서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국방부는 연내에 트랜스젠더 군 복무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누구나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변 전 하사의 호소는 이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과제가 되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