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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사설] ‘노태우 국가장’ 결정,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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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닷새간의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27일 대구 달서구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국가장 분향소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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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는데도, 정부가 국가장이라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기로 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7일 국무회의에서 “고인께서는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행정안전부는 “노 전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지만,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북방정책으로 공헌했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며 26~30일 닷새간 국가장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등에서 큰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소련·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죄과가 이런 업적으로는 가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크다는 점에서 국가장 결정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는 ‘신군부’의 핵심으로 전두환씨와 함께 12·12 군사반란 사건을 주도하고 우리 헌정 질서를 유린한 공범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염원을 짓밟은 5·17 계엄령 확대와 5·18 광주 시민 학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대법원은 1997년 군사반란과 내란 등 혐의로 전씨에게 무기징역, 그에게는 징역 17년 형을 확정 판결했다. 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확정됐다. 아들을 통해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나, 생전에 5·18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직접 사죄하지 않았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국가장법은 2조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국가장의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1조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 이 서거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번 국가장 결정이 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당장 광주시는 국가장법에 나와 있는 분향소 설치와 조기 게양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일각의 정서와 주장을 의식해 국가장을 결정한 것으로 보이나, 우리 사회가 어렵사리 정립해온 역사의식을 흩뜨리는 잘못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차제에 국가장 기준을 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국립묘지법은 내란·외환죄로 금고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나 국고 손실 등으로 금고 1년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국립 현충원 안장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국가장도 국립묘지 안장 기준과 맞추는 법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국민 의견 수렴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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