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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세계타워] 수사기관간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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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등 싸고 검경 견제… 정보 유출 등 ‘병폐’ 개선되길

올해는 달라진 국가 수사체계가 시행된 해다. 검찰이 과거 무소불위의 권한을 남용해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비틀었다는 국민적 비판 아래 검찰 권한을 제한하고 수사 기능을 분산한 게 핵심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권한이 60여년 만에 조정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신설됐다. 국가 수사체계를 손질한 첫해부터 정국이 대형 부정부패 의혹 사건으로 들끓고 있다. 특히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과 ‘고발사주 및 장모문건 등 검찰 사유화’ 의혹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다. 이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치명상을 입고, 대선 지형도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수사체계 개편 후 첫 대형사건을 맡은 검경과 공수처는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데다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자면 ‘신속한 진상 규명’이 절실하다. 하지만 세 기관 모두 ‘수렁을 헤매는’ 형국이다. 정치가 수사에 관여해서도 안 되지만 수사도 정치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 특히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 정국이 수사 상황에 따라 난장판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세계일보

조현일 사회부 차장


현재로선 수사기관들의 수사력과 의지에 의문이 제기되지만, 수사체계 개편 덕에 기관 간 견제 심리가 작동하고 긴장감이 확인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장동 의혹 사건 수사를 맡은 검경의 경쟁이 그렇다. 사람과 증거를 선점한 검찰이 주도권을 쥐었지만 경찰도 ‘뒷북 수사’ 논란을 벗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다. 경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검찰 압수수색 때 내던져버린 휴대전화를 바로 찾아내 검찰에 ‘한방’ 먹이기도 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검경은 ‘정영학 녹취록’을 두고도 날 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달 검찰에 제출한 이 녹취록은 2019∼2020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전 기자와 남욱 변호사, 유 전 본부장과 대화한 녹음 파일 19개를 정리한 것이다. 이를 공유해달라는 경찰, ‘우리가 하고 있다’며 거부한 검찰의 힘겨루기 끝에 경찰이 검찰 수사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법원 판단을 받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가진 검찰이 ‘불청구’를 통보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예견된 수순이지만 경찰이 독자 수사권을 갖게 되면서 가능해진 풍경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경찰이 녹취록을 확보하면 검찰이 뭘 활용하고 빼둔 건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검찰로선 다른 기관이 검찰 수사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북한 상황에 놓인 것”이라고 말했다. ‘남욱·정영학 콤비’가 2015년 수원지검이 대장동 개발 초기 로비 의혹을 수사할 당시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혐의 없음’으로 풀려난 것도 기관 간 견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가능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 두 사람과 당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변호인(박영수), 수원지검장(강찬우)이 모두 화천대유와 인연을 맺었다.

검찰과 공수처 간 기류도 마찬가지다. 공수처가 검찰청을 압수수색하고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강제수사를 이어가자, 검찰도 공수처의 피의사실 공표 혐의가 포착되면 강제수사를 벌이겠다는 분위기다. 요컨데 검경과 공수처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누구 하나 압도적 우위에 서지 못하고 내부 단속에도 신경 써야 할 환경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레 ‘여론몰이용 수사정보 유출’ 등 옛 병폐들이 바로잡힐지 주목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제는 그러지(병폐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기조가 분명히 있다”고 전했다.

조현일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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