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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사설]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화해와 치유의 계기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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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한 가운데 27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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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영면에 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진행되는 것은 2015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정부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 만큼 국민 화합에 방점을 둔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과오가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 언급대로 그에 대한 공과(功過)는 극명히 대비된다. 그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는 점은 그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과오다. 그는 퇴임 후 구속 수감된 첫 대통령이 됐다. 12·12 군사반란과 5·18 유혈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7년을, 200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과 2628억원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군부독재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대통령을 지냈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6·29선언으로 수용했다. 재임 시절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추진했고, 냉전 해체기에 37개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는 북방정책으로 외교 지평을 넓혔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 채택도 큰 성과로 꼽힌다.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은 15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이어오며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굴곡진 삶을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5·18 유족에게 직접 사과는 하지 않았으나 아들 재헌씨가 광주를 찾아 여러 차례 용서를 빌었다. 추징금도 완납했다. 뇌물 추징과 5·18 책임을 모두 회피한 채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는 전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과만 부풀려도, 공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 그는 어제 재헌씨가 공개한 유언에서 “모두 나의 무한책임”이라며 “저의 과오들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5·18 관련 단체와 진보 정치인들은 국가장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국가장법에 명시된 분향소 설치나 조기 게양도 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제 불귀의 객이 된 만큼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그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되 분열로 치닫는 논쟁은 없어야 하겠다. 국가장 기간만이라도 서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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