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한 등 조처에 "백신 안 나눈 선진국도 책임"
세계보건기구(WHO)가 26일(현지시간) 오미크론을 우려변이로 지정하자마자 하루도 되지 않아 전세계 약 50개국이 선제적으로 속속 남아프리카 국가발 항공편과 입국자를 차단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 차원에서 오미크론의 존재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알린 결정이 국제 제재와 다름없는 결과로 돌아오면서 사실상 ‘국제 왕따’ 신세에 처했다.
"빈국과 백신 안 나눈 선진국도 새 변종에 책임"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28일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계 각국에 남아공발 항공편 등을 차단한 조처를 즉각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오미크론의 위험성이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국 제한 조처를 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이런 조처는 남아공에 대한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작 남아공에 문을 걸어 닫은 선진국들도 더욱 위험한 변이종이 속속 출현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방의 코로나19 백신 사재기와 부스터샷 접종으로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에 대한 백신 공급이 지체된 것이 변이종 등장의 배경이 됐다는 주장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백신 불평등이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전 세계적 노력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모든 이가 접종을 받을 때까지는 모두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국가인 보츠와나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에드윈 디코로티 보츠와나 보건부 장관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첫 확진자는 타국에서 온 외교관들이었는데도 보츠와나가 오미크론 변이의 근원지로 취급받고 있다며 지적했다.
그는 "우리 과학자들은 변이를 빨리 확인해 투명하게 공개했다. 우리나라와 우리 과학자들은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고 항변했다.
라자루스 차퀘라 말라위 대통령도 페이스북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은 "부당하다"면서 "코로나19 관련 조처는 과학에 기반해야지 '아프로포비아'(흑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근거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신 아파르트헤이트 안 된다"…서방서도 자성 목소리서방 사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보건금융 대사인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7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백신을 건네주는 데 실패한 결과가 돌아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WHO는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올해 말까지 전 국민의 40% 이상에 백신을 접종시킬 수 있는 국가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래리 엘리엇 경제 에디터는 기고문에서 세계 선진국이 아프리카 국가를 상대로 '백신 아파르트헤이트(차별정책)'를 행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개도국과 빈곤국에 대한 백신 공급 필요성을 외면한 결과가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면서 "서방의 규제 강화는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꼬집었다.
이어 "모든 정부의 최우선 의무는 자국민의 안전 보장이겠지만, 어떤 문제는 공동의 대응으로만 풀 수 있다"면서 "최악의 결과가 도래한다면 새 변이종의 출현을 막을 능력을 갖췄던 선진국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번처럼 새로운 변이종의 등장을 보고한 개도국이나 빈곤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의 제재를 받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동대응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경제적 타격 등을 우려한 세계 각국이 새 변종의 등장을 한사코 숨길 가능성이 있어서다.
WHO의 마이클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남아공과 여타 국가가 (새 변이종을) 국제사회에 보고하고 바른 일을 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혀선 안 된다"면서 '징벌'이 아닌 합당한 지원이 이들 국가에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시민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소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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