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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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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난민 정책, 인권과 현실 사이서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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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인권 규정 체계적 무시…망명 신청 막아"·

난민 유입 증가…강제 추방·장벽 설치로 EU국경 닫아

연합뉴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지대의 난민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의 난민 정책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난민을 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막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최근 벨라루스가 중동 지역 이주민과 난민을 데려와 EU 국가인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경으로 내몰자 해당 국가는 군경을 동원해 강력하게 이들의 국경 통과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과 국경 경비병력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벨라루스는 일부 난민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나 아직 벨라루스에는 난민 수천 명이 EU 국경을 넘기 위해 남아 있다.

벨라루스는 난민이 독일로 갈 수 있게 폴란드 측에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했다. 난민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독일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가려다 실패한 사례는 벨라루스 국경뿐이 아니다.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하고 발칸 국가로 넘어가려다 국경 장벽에 막히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영불해협을 건너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려는 난민이 탄 소형 보트가 뒤집어지면서 31명이 숨졌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이 줄어들었지만 유럽행 난민은 증가하고 있다.

EU 통계를 보면 올해 EU 국가로 이주민과 난민 16만여명이 들어왔다. 지난해보다 70%나 증가했고,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도 45% 늘어났다.

2015∼2016년 대규모 난민 유입 사태로 곤욕을 치른 EU는 점차 난민 유입엔 엄격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강제 송환이 이뤄지고 난민이 망명 신청조차 하지 못한다고 인권단체들은 비판한다.

EU의 동부 경계인 폴란드는 아예 지난 8월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과 난민을 즉각 강제 추방하고 망명 신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난민 관련법을 제정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EU 집행위원회와 EU 회원국이 난민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약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단체 보고에 따르면 EU 국경 지역에서 난민을 일상적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으며 난민은 점점 망명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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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보트를 타고 EU 국가 진입을 시도하는 난민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U 국경경비 기관인 유럽국경·해안경비청(프론텍스)은 올해 상반기에 역대 최다인 8천여 명의 난민을 강제 송환했다.

프론텍스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강제송환과 추방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프론텍스는 국제 인권법과 유럽 인권규약 등을 일상적이고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유럽 비정부기구(NGO)인 스테이트워치는 프론텍스가 박해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의 추방이나 강제귀국을 금지하는 국제법상 비송환 원칙을 준수했는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엠네스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EU가 난민 유입을 줄이려고 터키, 리비아와 난민 송환협정을 체결한 것이 난민을 더욱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EU 국가에서 추방된 난민을 터키와 리비아가 다시 받아 수용하기로 했지만 난민은 열악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심지어 리비아의 난민 수용소에서는 폭력과 성적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앰네스티는 EU 회원국이 난민 유입 자체를 줄이려고 더 제한적이고 징벌적인 난민 정책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EU 회원국은 나아가 난민 유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국경 장벽을 세우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 쪽 국경에 40㎞의 장벽과 무인 감시장치도 설치했다.

벨라루스의 '난민 공격'에 직면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국경 장벽 설치를 추진하면서 EU에 설치비용까지 요청했다.

지난 10월에는 이들 3개국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그리스, 키프로스,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등 9개 EU 회원국이 국경 장벽 설치 계획을 밝히면서 EU 집행위원회에 '긴급하게 우선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권단체들이 국제법 위반을 꾸준히 지적하지만 오히려 국제인권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네바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인구 이동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 발생 등 새로운 유형의 복잡한 21세기 난민 사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헝가리의 한 고위 관리는 현재의 EU 이민법 체계는 불법적인 이주를 부추기고 국경에서 난민의 유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시대와 상황에 맞게 이민법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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