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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부터 분노가 치민다" 성추행 사망 女중사가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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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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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은폐·회유 등의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의 생전 메모가 공개됐다.

17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를 당한 다음 날 작성한 메모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남자였다면 선·후임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자책했다.

이어 "(내가)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뼛속부터 분노가 치민다"며 "이 모든 질타와 비난은 가해자 몫인데, 왜 내가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지"라고 적었다.

또 "나는 사람들의 비난 어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두려워했다.

이 메모는 지난 17일 군사법원에서 열린 가해자 장 중사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처음 공개됐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장 중사는 지난 3월 초 후임 이 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이 중사에게 자신의 잘못을 무마해달라고 압박할 목적으로 "죽어버리겠다"며 자해 협박을 한 혐의도 받는다.

이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 중사에게 군검찰의 구형량보다 낮은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10월8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장 중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죽음을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 등을 보낸 사실에 대해선 특가법상 보복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메시지가 "피고인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피해자의 이후 선임·남자친구와의 대화나 문자메시지에서 피고인의 극단적 선택을 우려하는 모습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유족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유족 측은 재판부에 "가해자가 죽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게 협박으로 안 들리느냐"고 항의했다.

또 "6개월 동안 재판을 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온 게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9년이 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이 중사 어머니는 실신해 구급차로 후송됐다.

유족 측 변호인은 "이미 국방부 수사심의위원회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한 협박 혐의가 무죄로 나온 건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군 검사가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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