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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슈 일회용품 사용과 퇴출

카페 ‘일회용 컵 퇴출’ 가능성 보았다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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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일회용컵 퇴출 실험’

18곳서 다회용 컵 사용 7주간

일회용컵 약 20만개 감소효과

고객 “불편해도 환경 위해 감수”

세계일보

최근 서울 중구 스타벅스 시청플러스점에서 고객들이 무인 회수기에 다회용 컵을 반납하고 있다.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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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매장은 일회용 대신 다회용 컵에 제공되는데 괜찮으십니까?”

2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카페 스타벅스 서소문로점의 한 직원이 주문하는 고객에게 이같이 말했다. 스타벅스 서소문로점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스타벅스가 추진 중인 ‘다회용 컵 사용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현재까지 ‘일회용 컵 없는 에코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고객은 일회용 컵을 못 쓴다는 말을 듣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점심시간을 맞아 매장을 찾은 직장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이용했다. 붐비는 고객들 사이로 이전에 가지고 갔던 다회용 컵을 반납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 사람도 여럿 눈에 띄었다. 매장 내 무인회수기 앞으로 길게는 10m 가까이 대기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직장인 이하나(28)씨는 “(다회용 컵을 이용하는 게) 조금 불편하지만 환경을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며 “이 사업이 모든 매장으로 확대된다면 어디서나 반납할 수 있어서 더욱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고객은 불편해서 앞으로 다른 매장을 찾겠다고 했다. 박모(35)씨는 “점심시간에 테이크 아웃을 하면 나중에 또 와서 반납해야 하고 너무 번거롭다”며 “앞으로는 일회용 컵에 주는 다른 카페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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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스타벅스가 매장 내 일회용 컵을 없애는 ‘제로 웨이스트’ 실험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돼가는 가운데 일회용 컵을 약 20만개 감소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6일부터 12월26일까지 7주 동안 다회용 컵 총 20만3500개가 사용됐고, 다회용 컵이 사용된 만큼 일회용 컵 사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계산하면 일회용 컵을 하루에 4000개가량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앞서 환경부, 서울시, 스타벅스 등이 결성한 친환경협의체 ‘해빗에코얼라이언스’는 11월6일부터 ‘일회용 컵 제로(0)’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협의체에는 서울시청 일대 스타벅스 12개 매장, 달콤커피 매장과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카페 5곳이 참여했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다회용 컵은 색소와 배합제 등 첨가물이 일절 섞이지 않았고, 향후 컵이 폐기될 때 재활용되기 쉽게 단일 소재의 무색 컵으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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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진 일부 매장으로 국한됐지만 해당 매장을 방문해 음료를 들고 나갈 때는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에 음료를 받아야 한다. 대신 계산할 때 음료값에 보증금 1000원이 추가되고 돌려받으려면 주요 매장에 설치된 무인 회수기에 반납해야 한다. 사용한 컵은 전문 세척업체를 통해 수거돼 세척-살균-소독 과정을 거쳐 카페에 다시 공급된다.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참여로 다회용 문화 정착될까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국내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참여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7월6일 제주도에서 4개 매장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제주도 전 매장을 일회용 컵 없는 매장으로 만들며 빠른 행보를 보였다. 스타벅스 측은 일부 매장만 보여주기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내 서울의 모든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퇴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스타벅스 측에 따르면 서울과 제주도 모든 매장을 ‘일회용 컵 없는 에코매장’으로 운영할 경우 연간 1억개의 일회용 컵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그동안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지난해 6월 강릉에서 바닷가에 버려지는 일회용 컵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플라스틱 컵 되가져오기 사업’ 등을 시행했지만 대형 프렌차이즈의 불참과 시민들의 저조한 참여로 성과가 별로였다. 그러나 매장 수도 많고 고객 충성도가 높은 스타벅스가 참여한다면 서울에서 다회용 컵 문화가 정착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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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용 컵 ‘반납률’ 점점 늘고 순환돼

다회용 컵 사용이 자리 잡으려면 ‘이용 건수’도 많아야 하지만 ‘반납률’이 중요하다. 반납률이 높다는 것은 컵이 잘 순환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목표 반납률을 80%로 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반납률은 64% 정도로 목표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곧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서울시는 전망한다. 실제로 시행 둘째 주부터는 반납률이 60%를 넘었고 다섯째 주부터는 70%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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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고객 접근성을 높이고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이 많다. 사용한 다회용 컵은 컵에 부착된 스티커를 떼고 깨끗이 씻어 반납해야 하는데, 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기계가 인식을 잘 못하는 등 기계적 결함도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하루에 몇 번이고 무인 회수기를 점검하는 일이 잦았다.

고객들이 음료를 산 매장이 아니라 어디서든 반납할 수 있도록 무인 회수기 대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은 시청역 인근 18개 매장과 서울시청 본관 건물 안에만 설치돼 있다. 다회용 컵을 처음 사용해봤다는 장모(29)씨는 “회사가 이 근처가 아니어서 컵을 반납하려면 다시 시간을 내 시청까지 와야 하는데 너무 불편하다”며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공공시설 등에 설치해주면 반납하기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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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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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업체 참여는 불투명… 시민들 느끼는 불편함이나 위생 우려도 극복해야

서울시는 시범사업이 끝나면 다른 프랜차이즈의 참여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매장이 직영점으로 이뤄진 스타벅스와 달리 가맹점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 가맹점주를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매장 규모가 작은 개인 카페나 영세 사업장의 경우 부피가 큰 무인 회수기를 설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로고가 없는 다회용 컵을 사용해야 해 마케팅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직원 수가 적고 매장이 작은 개인 카페의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무인 회수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고 밝혔다.

많은 사람이 함께 쓰는 다회용 컵의 위생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시는 미생물 테스트 결과 전문 세척을 거친 다회용 컵이 일반적인 일회용 컵보다 오염도가 낮게 나왔고 더 깨끗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고객들이 선뜻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게 꺼려질 수 있다.

서울시청 인근 회사에 다니는 양모(29)씨는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깨끗이 다회용 컵을 씻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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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만드는 불필요한 플라스틱 감축 더 중요”

“친환경 소비를 말하기 전에 굿즈(특정 업체·유명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상품) 마케팅부터 하지 말아야죠.”

환경운동연합 백나윤(사진) 활동가는 서울시와 스타벅스의 ‘다회용 컵 사용 시범사업’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보다 기업에서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을 줄여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비자에게 일회용품 소비를 지양하자고 말하면서 동시에 형형색색의 텀블러 등을 판매하는 게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그간 스타벅스는 친환경을 표방하면서도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은 소재의 텀블러, 에코백 등 굿즈 소비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9월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다회용 컵 증정 행사로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 이 컵을 받으려는 소비자가 몰려 불필요한 다회용 컵을 대량생산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백 활동가는 스타벅스의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다회용 컵 사용을 단순히 권하는 수준을 넘어서 다회용 컵 세척기·반납기계 확충 등 여건 마련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 활동가는 “다회용 컵만 가져다주면 끝이 아니다”며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이것이 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기업을 상대로 불필요한 플라스틱 제품·포장지 생산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4월에는 국내 대형 제과업체를 대상으로 과자 상품 내 플라스틱 용기 제거를 촉구하는 활동도 했다. 그간 업계는 부서지기 쉬운 과자의 특성상 플라스틱 용기를 써왔지만, 최근 롯데제과·해태제과 등 모두 7개 기업이 플라스틱 용기 제거를 약속했다. 백 활동가는 “그간 기업들에 공문도 보내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제품을 없애자는 ‘플라스틱 어택’ 운동을 해왔다”며 “소비자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것보다 기업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양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의 의식도 이제는 과거와 달라졌다”며 “기업들도 불필요한 제품 생산을 줄이고 이런 소비자들의 개인 용기, 텀블러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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