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직격탄 맞은 은행지점
서울지역만 작년 98곳 문 닫아
노인 많은 농촌도 점포 폐쇄 대상
디지털 소외계층 위한 대안 필요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성기호 기자, 박선미 기자] 서울의 명품상권 메카로 불리는 강남구청 주변은 지난해 ‘전국 100대 상권’ 중 70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전년대비 13단계 하락한 순위다. 서울 주요 상권 중 가장 순위 낙폭이 컸다.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주요 브랜드의 점포들이 문을 닫았고 은행 점포들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강남구청 인근에서만 신한은행(강남구청지점), 우리은행(언주역지점), NH농협은행(학동역지점)영업점이 지난해 사라졌다.
부산을 대표하는 중심 상권인 동래역 인근에서는 지난해 4개의 은행 점포가 철수했다. 하나은행 사직중앙점과 지방은행 점포 3곳이 문을 닫았다. 동래역 상권(60위→73위)은 지난해 전국 100대 상권 중 부산역 상권과 함께 크게 순위가 하락한 곳이다. 지역공동화 및 상권쇠퇴로 점포 수익이 줄어들면서 은행들의 ‘폐쇄살생부’에 포함된 것이다.
지난해 은행 점포가 급격하게 통·폐합된 가운데 쇠퇴한 상권에서의 점포 폐쇄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든 지역 상권의 경우 영업점별 고객 접근성이 떨어지고 점포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 영향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폐쇄하거나 통합한 점포는 251개에 달했다. 같은 해 8월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연간 폐쇄 점포 계획 222곳을 넘어선 수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98곳으로 은행 점포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 전국 단위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 지역에서는 62곳의 영업점이 문을 닫았고 ▲부산 17곳 ▲경북 12곳 ▲경남 12곳 ▲대구 9곳 순이었다. 가장 적게 줄어든 지역은 전북과 세종으로 각각 1곳의 지점이 폐쇄됐다.
은행 지점 폐쇄는 지역 내 상권이 쇠퇴하거나 경제성이 떨어진 곳에서 주로 사라졌다. 이는 상권 분석 통계로도 확인된다. SK텔레콤이 빅테이터 분석 플랫폼인 ‘지오비전’을 통해 취합한 ‘2021년 대한민국 100대 상권’에 따르면 전년 대비 순위가 10단계 이상 하락한 곳은 총 11곳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6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가 2곳, 부산이 2곳, 전남이 1곳으로 나타났다. 지역 상권 쇠퇴가 은행 점포 축소 수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 것. 실제 지난해 수도권 다음으로 은행 점포가 많이 사라진 부산의 경우 ‘100대 상권’ 9곳 중 순위가 상승한 곳은 단 한 곳(범일동)으로 조사됐다. 3곳은 전년과 같은 순위를 유지했고, 5곳은 순위가 하락했다.
경북과 경남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 12곳의 은행 지점이 사라진 경북의 경우 ‘100대 상권’에 이름을 올린 곳은 단 2곳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89위(경산시 중앙동)와 99위(포항시 상대동) 등 전체 순위에서 후순위였다. 특히 경남은 ‘100대 상권’ 중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 점포의 경우 수익성과 비용 효율성, 상권쇠퇴 등을 고려해 폐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인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광역시에서도 상권 흥망성쇠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화율이 농촌 지역에서의 점포 폐쇄가 향후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올해도 은행 점포 통폐합은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다. 5대 은행이 1분기 중 문을 닫을 것으로 계획한 점포 수는 110개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전체 폐점 수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지점 폐쇄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존 전략이라지만…대안 없이 ‘갈등’만 키워
은행권이 점포 운영 효율화 명목으로 1년에 점포를 수백개씩 폐쇄하는 사이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금융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농어민·장애인 등의 은행 업무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마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명확한 대안과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다음달 서울시 노원구 소재 월계동 지점을 폐점하고 인근 장위동 지점으로 통합하려던 계획을 최근 철회했다. 디지털기기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 등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은행 폐쇄가 지역 주민의 반발로 제동이 걸린 첫 사례다.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은행 내부의 불만도 거세다. 은행 노조는 잇단 점포 폐쇄가 임직원수 감소 등으로 일자리 증발을 야기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금융의 디지털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점 수 축소는 효율적인 점포 운영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필수 생존전략이라고 항변한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안착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점포를 정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
문제는 점포 축소가 적절한 정책적 대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권의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막기 위해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마련했다.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 등을 의무화 했지만 형식적 절차로 운영된 탓에 적절한 제동을 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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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은 고육지책으로 올해부터 고령층 ATM 사용 수수료 면제하거나 화상 서비스 및 편의점 내 기기를 통한 은행 서비스 확대 등 소비자불편 해소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층은 약 860만명. 노인 10명 중 5명은 현금인출을 위해 은행 창구를 찾고 있다. 결국 점포 축소 및 ATM 감소는 현금 입출금 통로의 감소로 이어져 현금이용자와 고령층에게 불편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금융당국이 발표한 은행 점포 축소 정책들은 명확한 대안과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공동지점제나 공동ATM의 추진도 부진한 상황"이라면서 "금융당국과 업계가 금융소외현상 최소화라는 목적 하에 실효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점 폐쇄 전 세계적 트렌드…"금융소외층 대책 마련 필요"
은행권의 점포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트다. 세계 주요국들은 일부 계층의 금융소외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점포 운영, 금융교육 실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은행권의 점포 축소와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부터 2017년 사이 은행 점포가 1만1365개에서 7207개로 37% 감소해 금융서비스 이용 불편과 반대 여론이 일자 우체국 점포망을 활용해 우체국에 여러 은행의 점포를 입점시키는 형태의 공동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점포가 고객과의 접점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나 인구감소와 고령화, 저금리의 지속, 비현금결제 증가와 기술발전 등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점포망 재편이 금융 현안으로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지방은행들이 협약을 체결해 공동점포를 운영하고 점포의 기능을 줄여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점포를 기능별로 분리해 특화점포로 전환하는 등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6개 은행이 지방 소도시에서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약국, 관광기구, 구의회 등 커뮤니티 파트너를 통해 공간과 인력을 지원받아 공동 자동화기기(ATM)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보조 인력 배치를 통해 고령층 등의 공동 ATM 사용 편의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업체)·핀테크(금융기술기업)의 금융서비스 진출이 확대되고 비대면 거래로 금융환경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지점 축소는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점포 축소에 따른 금융소회현상을 방치할 경우 일부 계층이 탈락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점 축소는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트렌트로, 은행들이 선택해야만 하는 생존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1위고 통신 인프라가 잘 가꿔진 나라로, 그 상황에서 인터넷은행이 탄생하니 경쟁력이 강해졌고 시중은행도 여기에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라며 "금융당국이 급격하게 축소하는 걸 막고 있지만 추세이기 때문에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고령층이 특히 불편해질 수 있는데 스마트폰 교육이라던가 기기보급 등의 정책을 정부가 병행해야 한다"며 "60~70대 스마트폰 보급률도 사상 최대로 증가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부작용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구현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금융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고령층과 장애인 등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래수단을 제공하고 적절한 금융 교육을 실시해 금융소외계층이 변화하는 금융시장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현재도 연구되고 있는 고령층·장애인 친화적인 유저인터페이스(UI) 구축과 이용자집단별 맞춤 서비스 강화, 창구 내 고령층·장애인 안내 강화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환경 변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용자에 대해 맞춤형 서비스와 지속적인 안내절차를 개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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