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병은 국내 조선업 지형도를 ‘빅3’(삼성중공업 포함)에서 ‘빅2’로 개편하는 거사(擧事)에 해당했다. 오랜 기간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해온 대우조선해양을 민영화하기 위한 ‘정부 과제’이기도 했다. 다만 조선이나 항공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M&A를 진행할 때 주요 경쟁당국의 허가를 받게 돼 있어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EU·중국·일본·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6개국에서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이처럼 국가적 차원의 사안임에도 그동안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해 이번 합병의 무산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EU가 지난 2019년 12월 기업결함심사를 개시한 이후 이번에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만 2년이 넘는다. 그 사이 중국과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경쟁당국은 이번 합병을 조건 없이 찬성했다. 반면 가장 먼저 결론을 내리고 해외 국가에 입장을 피력해야 할 우리나라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은 정작 지금껏 판단을 미뤄왔다.
특히 EU가 합병을 반대하며 내세운 이유는 ‘독과점 우려’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점유율 60%를 넘겨 독점적 지배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합병 당사자들은 조선업 수주 시장에서 독과점 여부는 ‘시장 점유율’이 아닌 ‘유효 경쟁자 존재 수’라고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굳이 독과점 이유가 아니더라도 세계 조선업 1위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메가 조선사’가 탄생하는 것을 반길만한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심사 통과를 안일하게 낙관하다 결국 예상 답안을 내민 EU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당장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며 ‘플랜B’를 찾겠다는 구상이지만 잘 될지 미지수다. 특히 합병이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매물로 나오더라도 적절한 인수 주체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K조선 경쟁력 강화와 함께 내세운 ‘역대급 조선사 빅딜’은 3년 간의 시간만 허비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대우조선해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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