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발굴된 손잡은 남녀 유골. 사진 출처=가제타 디 모데나 |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DNA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천년전 인류의 무덤에 대한 발굴 결과 남녀 성별에 대한 현대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남녀가 포옹한 채 매장됐다 발굴돼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주인공일 수 있다며 전세계의 화제가 됐던 이탈리아 만토바의 '발다로의 연인'에 대해서도 DNA 분석을 통한 성별 조사가 재진행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18일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2009년 이탈리아 모데나 인근에 위치한 1500년 전 무덤들을 발굴하던 중 한 무덤에서 손을 잡은 채 매장된 두 명의 인골이 발굴됐다. 당시 지역일간지 등은 이를 당연히 남녀 한쌍으로 여기고 "남녀간 사랑이 얼마나 영원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당시 유골의 DNA 정보가 훼손돼 있어 정확한 성별을 밝혀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2019년 볼로냐대 연구팀이 새로운 방법으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놀랍게도 이 한 쌍의 인골은 모두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이 1500년전 해당 지역의 동성애가 일상적이었던 가족 및 성 문화를 입증해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두 사람이 전투에서 함께 사망한 전우 사이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전투로 인한 상처가 보이지 않는 데다가 해당 무덤군에는 여성과 6살 아이도 포함돼 있다는 반박에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2017년 스웨덴 비르카에서 발굴된 바이킹 무덤에서도 성별이 뒤집힌 인골 DNA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 무덤은 19세기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고, 무기로 가득차 있어 분명히 남성이 주인일 것이라고 추측돼 왔다. 그러나 스웨덴 웁살라대학 연구팀의 DNA 샘플 분석 결과 무덤의 주인은 여성이었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전통적인 바이킹에 대한 관념에 맞지 않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바이킹족들은 전통적으로 칼과 같은 무기는 남성, 보석은 여성들의 무덤에 부장해 왔기 때문이다.
레젝 가르데와 덴마크 국립박물관 고고학자는 가디언에 "(무덤 속에서 발견된) 그녀는 전사였을 수 있지만 90%의 무기가 부장된 무덤에선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유골들이 발견됐다"면서 "아마 바이킹들의 정신세계에는 '여성 전사'라는 개념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투르쿠대학의 연구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세 시대 핀란드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으로 나타났는데, 이 유골은 뜻밖에도 여성용 보석류ㆍ의류로 치장하고 있었다.
고고학계는 그동안 무덤 속 부장물이나 유골의 형태에 따라 주인을 판정해 왔다. 그런데 DNA 분석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처럼 성별이 뒤바뀌는 일이 잦아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볼로냐대 연구팀의 경우 '발다로의 연인'로 이름 붙여진 또 한 쌍의 유골의 성별을 분석해 올 가을쯤 발표할 예정이다. 모데나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만토바 국립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이 유골들은 약 6000년 전 쯤 16세 전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 발굴 당시 코와 코를 맞댄 채 팔로 서로 가슴을 누르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유골이 발견된 만토바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도시여서 더 큰 관심을 모았다.
발굴팀은 당시 뼈의 형태로 성별을 추정해 남녀 사이로 판정했지만 볼로냐대 연구팀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남녀간 뼈의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그것은 호르몬 분비에 의한 것으로 성인이 아닌 청소년기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레베카 고우랜드 더럼대 교수는 "사춘기를 거쳐야 남녀간 골격 차이가 분명해진다"면서 "성인마저도 골격이 완전하지 않거나 핵심 뼈들이 없을 경우 단순히 형태만으로 성별을 판별하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과학자들은 유인원들의 DNA 분석을 시도해 성별을 구분해 내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대부분 DNA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까다롭지만, 치아 법랑질(enamal)을 분석해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골상학적 분석에 의해 대퇴부 반쪽 뼈의 모양만으로 '여성'으로 분류돼 인류 최초의 '어머니'로 여겨졌던 루시의 화석을 분석해보니 남자라는 결론이 나와 인류 최초의 '아버지'로 뒤바꿀 수 있다.
파멜라 겔러 미 마이애미대 생물고고학 교수는 "현대인들은 기존 범주에 너무 얽매여 있어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창의성이 정말 부족하다"면서 "사랑이나 정체성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 고고학자들은 사용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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