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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옷 벗기고 수치심 줘…나같은 피해자 없길 바란다" 30대 노동자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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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중 선배들로부터 괴롭힘 당해

"회사 PC 증거 더 있으니 낱낱히 조사해 달라"

휴대전화에 유서, 사진 등 남기고 극단적 선택

아시아경제

A씨를 괴롭힌 것으로 알려진 직장 내 선배들의 모습 / 사진=M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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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 2018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30대 노동자의 유서가 뒤늦게 공개됐다. 유서에 따르면 이 노동자는 직장 내 선배로부터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국내 한 철강기업에서 근무하던 A씨(36)는 지난 2018년 11월25일 전북 군산 한 공터 앞에 세운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로부터 3일 전인 같은달 22일, 그는 "자취방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A씨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한 25분가량의 영상과 함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서 A씨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선배인 B씨, C씨 등을 거론하면서, 입사 이후 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A씨는 "B씨가 입사한 2012년 4월 '문신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며 "찍히기 싫어서 이야기 못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또 "2016년 12월10일 16시30분께는 복집에서 볼 뽀뽀, 17시40분께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 그렇게 행동하는 게 너무 싫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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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에 유서와 사진, 영상 등을 남겼다. / 사진=M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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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근무 부서는 작업 당시 소음이 심한 곳이었고, 이로 인해 A씨는 청력 저하로 고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부서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A씨는 직장에 다닌 6년간 당했던 일들을 유서에 세세하게 적어 놓았고, 후배들에게 "쓰레기 같은 벌레 때문에 고통받지 말자"고 전하기도 했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이 사진은 9명이 남성 중 2명만 옷을 입고 있고, 나머지 남성들은 발가벗은 채 손으로 중요 부위만 가린 모습이다.

사진에 대해 A씨는 "(회사 선배)가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라며 "회사 PC에 더 있을 테니 낱낱이 조사해 나 같은 피해자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A씨의 유서와 사진 등을 공개한 유족 측은 MBC와 인터뷰에서 "(A씨는) 평소 가족들에게 자세한 정황은 말하지 않고 '너무 힘들다', '나를 욕하고 괴롭힌다' 식의 이야기만 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월 A씨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맞다고 인정했다. A씨의 유족 측은 선배인 B씨와 C씨를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수사기관은 "오래전 일이라 공소시효가 지났으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최근 검찰에 재조사해달라며 항고장을 내고,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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