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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허리 펴고 걷는 게 제일 하고 싶어…꼭 이겨내고 다시 달리겠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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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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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지난 18일 집 근처인 경기 용인 기흥구 농서동 근린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길게 뻗은 소나무 아래서 잠시 쉬고 있다.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이봉주는 “꼭 이겨내고 다시 달리겠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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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생. ‘국민 마라토너’로 불리는 한국 마라톤의 대표 스타다. 1990년 데뷔해 2009년 은퇴하기까지 20년간 42.195㎞ 풀코스에 44차례 도전해 41번이나 완주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98년 방콕·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땄다. 2001년 보스턴국제마라톤,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을 포함해 모두 9차례 우승했다.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2위) 때 수립한 2시간7분20초의 한국 최고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재작년 초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난치병을 만나 2년 넘게 싸우고 있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는 해마다 이맘때면 따뜻한 남쪽에 있었다. 제주 아니면 경남 고성이나 전남 장흥이었다. 새 시즌을 앞둔 겨울 전지훈련. 그때 이봉주는 아침 먹고 뛰고 점심 먹고 또 뛰었다. 온종일, 묵묵히 달리는 게 그의 삶의 전부였다. 이마에 질끈 동여맨 태극 문양의 흰 머리띠와 턱수염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가 대회에 나가 힘차게 달리면 온 국민이 함께 열렬히 응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봉주는 전성기 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슈퍼스타다. 한국 마라톤의 간판으로 굵직한 국내외 대회에서 눈부신 성적을 냈다. 우승 9번, 준우승 6번. 그보다 빛나는 건 포기할 줄 모르는 뚝심으로 41차례나 풀코스를 완주한 일이다. 다시 없을 대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스타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어수룩해 보이고 수더분한 인상대로 동네 형이나 아저씨 같다. 마라토너 이봉주를 모르는 젊은이라면 그를 가끔 TV에 나오는 운동 선수 출신 방송인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는 근래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작정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녀 ‘봉출귀몰’이라는 우스운 새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활기차게 뛰던 ‘봉달이’ 이봉주는 요즘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근육긴장이상증, 영어로 디스토니아라는 난치병과 함께하고 있어서다. 2020년 1월쯤 알게 됐으니 꼬박 2년이 지났다. 예기치 못한 시련에 맞서고 있는 그를 지난 18일 그의 집 근처 단골 카페에서 만났다. 얼굴은 조금 야위어 보였지만 눈부터 순한 미소는 여전했다. 고개를 앞으로 반쯤 숙여 어깨가 움츠러들고 등과 허리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하지는 않았다.

병은 나누는 게 낫다는 말처럼,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 주려 아픈 모습 공개
TV서 부른 ‘아! 옛날이여’ 가사 중 ‘다시 돌아올 수 없나,
그날’에 지금의 내 심정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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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가 지난해 11월 경기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봉주 쾌유 기원 마라톤’에 참여해 팬들과 함께 1.2㎞를 달린 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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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재작년 초 이 병을 알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허리를 못 펴게 되면서 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병원 곳곳을 가봤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답답하고 불안했다. 구부정한 채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서 1년 넘게 집에서 주로 지냈다. 스스로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 어떤 증상인가.

“배 아래쪽 근육이 계속 당긴다. 그래서 허리를 펴려면 힘을 줘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통증은 없다. 걸을 때 숨이 좀 찬다. 잘 때도 바로 누우면 머리가 들리기 때문에 옆으로 돌아 누워야 한다. 근육 경련이 끊이지 않아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잔 날도 많다. 속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잔다.”

- 병명은 무엇인가.

“디스토니아(근이상증)라는 진단을 받았다.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근육이 비틀어지거나 비정상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상 운동이 나타나는 신경질환이라고 한다. 문제는 원인불명이라는 것이다. 암흑 터널에 있는 느낌이다. 평생 이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너무 많이 한 과부하가 원인은 아닐까.

“현역 때 연습량까지 합치면 지구를 대여섯 바퀴쯤 도는 거리를 뛰기는 했다. 하지만 달리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마라톤 선수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도 아니고. 내가 몸 관리에 방심했던 부분이 쌓였다가 일순간에 터진 게 아닌가 싶다.”

이봉주는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불청객 난치병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겼다. 하지만 원인이 잡히지 않아 수술을 받고도 차도가 없고 회복이 더디기만 한 상황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짝발, 평발의 약점을 떨쳐내고 투지와 끈기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그인데도 때때로 밀려드는 좌절감과 나약한 마음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마라톤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골인 순간을 올렸던데.

“그게 내 마라톤 인생에서 제일 컸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서 최선의 레이스를 펼친 것이다. 비록 3초 차이로 2등, 은메달에 그쳤지만.”

- 그때 2위로 들어오고도 환하게 웃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 때 선수들이 메달과 상관없이 기뻐한 게 이봉주 선수의 영향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하. 내가 원조일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기뻤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남아공의 투과니 선수와는 그해 12월 후쿠오카대회 때 다시 맞붙어 내가 이겼다.”

- ‘굵직한 2위’를 많이 해서인지 이봉주라 하면 2등 이미지도 떠오른다. 물론 우승 횟수가 준우승 횟수보다 많지만.

“애틀랜타 때 말고도 2위로 뜬 적이 많다. 그해 국가대표 선발전인 동아마라톤 때도 세계 최강 마틴 피스 선수에 이어 2위였다. 2시간7분44초로 처음 한국 기록을 깨뜨린 1998년 로테르담, 그보다 24초 앞당긴 지금의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운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도 2위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2등이라도 다음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그때는 충분히, 자신있게 만족했던 것 같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현장에서 취재했는데, 우승 후보였던 이봉주 선수가 한참 뒤에 들어왔다. 또 다른 올림픽 때 성적은 어땠나.

“아테네에서는 컨디션이 무척 안 좋았다. 연습 레이스 도중 소변을 보는데 피가 많이 나왔다. 그런 일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그래도 끝까지 뛰었다(14위). 2000년 시드니에서는 넘어진 앞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는 바람에 24위로 처졌고, 2008년 베이징 때는 전성기가 한참 지난 터라 28위에 그쳤다. 그래도 완주는 했다.”

- 이봉주의 마라톤 경력은 41회 완주가 핵심인데,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중간에 포기하는 걸 배운 적이 없다, 하하. 이번에 기권하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일 때 쉽게 그만둘 것 같다는 걱정이 제일 많았다. 그래서 출발 때는 우승을 머릿속에 그리지만 레이스를 하면서는 내 페이스대로 끝까지 뛰는 것에 집중한다. 선수는 1년에 딱 두 번 뛰는데 지난 6개월간 훈련한 걸 수포로 돌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마라톤은 완주다.”

- 3차례 기권한 기억도 잊지 못했겠다.

“당연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내 대표선발전, 2001년 캐나다 애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 2006년 일본 비와코 대회다. 그때는 정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더라. 얼른 다음 대회 생각했다. 안 좋은 건 빨리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 마지막 레이스였던 2009년 대전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하고 은퇴했다. 마라톤 선수로 후회는 없나.

“없다. 내내 치열하게 연습했고 할 건 다 했으니까. 마라톤 선수로 환갑 나이까지 뛰었고, 은퇴 시점도 잘 맞았다.”

- 은퇴 후에도 계속 뛰었나.

“매일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15㎞ 정도씩 조깅을 꾸준히 했다. 주말에는 동호인 마라톤대회에 초청받아 함께 뛰었다. 달리기가 몸에 배어 있어 하루도 뛰지 않으면 몸이 거북했다. 선수 때는 꼭 해야 할 일이라 뛰었다면 은퇴 후에는 즐겁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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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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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기만 한 달리기를, 지금 이봉주는 하지 못한다. 애써 재활하느라 부지런히 산책에 나서지만 걷기조차 불편하다. 이봉주는 “허리 펴고 걷는 게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이어 “단 30분 만이라도 제대로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인생 마라톤의 반환점 막 지난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길은 정신력으로 버터야 할 구간
걱정마세요, 좋아질 일만 남았으니까요
빨리 병 떨치고 일어나 팬들에게 보답하려 최선

-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지.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일주일에 4번 재활센터에 가서 3~4시간씩 치료를 받는다. 집에서는 거기서 배운 운동을 계속한다. 집 안에 목·허리 스트레칭과 근력 강화를 돕는 운동기구가 많다. 외출은 꼭 필요할 때만 하고, 소나무가 많은 동네 근린공원 산길로 산책을 자주 나간다. 선수 시절부터 매일 1시간씩은 달렸던 코스인데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3시간을 걸어도 다 못 간다.”

- 발병 후 1년 이상 조용히 지내다가 지난해 언젠가부터 아픈 모습을 공개했다. 계기가 있었나.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여서 그들이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을 얻기 바랐다. 나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에게도 이봉주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도 싶었다. 병은 나누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나.”

- 지난해 8월 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이선희씨의 ‘아! 옛날이여’를 열창하는 장면을 봤다. 노래를 참 잘했다.

“한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즐겨부르던 노래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출연 약속은 해놓은 상태에서 뭘 부를까 고민하다 결정했다. 이선희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가수다. 옛날 생각하면서 불러보자고 마음먹었다. 잘 부르고 싶었는데 촬영 때 엄청 떨려서 중간에 박자와 음정을 놓쳤다.”

- 어느 옛날을 생각하면서 부른 건가. 애틀랜타 올림픽인가. 진지한 표정이 정말 짠해 보였는데.

“복합적으로 다 들어가 있다. 어느 한 순간이 아니었다. 지금은 몸이 안 좋으니까, 건강했던 예전이 모두 떠올랐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며 점점 불안해져서 안 아팠던 시절이 그리워지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난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나, 그 날~’이라는 가사가 모두 말했다.”

- 지난해 11월 말에는 ‘이봉주 쾌유 기원 마라톤 대회’에 나가 195명의 페이스메이커 팬들과 함께 달렸는데.

“아프고 나서 처음 달려봤다. 400m 트랙 세 바퀴, 1.2㎞를 몇 번 쉬면서 끝까지 달렸다. 42번째 완주한 것 이상으로 기뻤다. 이봉주를 연호하고 박수치며 함께 달려준 팬들이 너무 고마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방에서 참여한 분들도 있어 큰 용기를 얻었다. 내가 얼른 병을 떨치고 일어나는 게 최고의 보답이라 생각했다.”

- 팬들에게 또 한 번 전하고 싶은 말은.

“걱정 마세요. 꼭 좋아질 겁니다. 좋아질 일만 남았으니까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건 너무 흔하지만, 마라토너 이봉주에게는 잘 들어맞을 수 있다. 어쩌면 이봉주는 44번의 풀코스 인생에 도전해 41번 완주한 값진 경험을 했다. 단 3번의 중도포기는 긍정 마인드로 이미 극복했고, 우여곡절이 각기 다른 41번 인생사를 겪은 셈이다. 처음부터 치고 나갔든지, 막판에 스퍼트를 했든지 모두 보람차고 당당하게 완주했다. 이봉주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을 뿐인데 세상이 잠시 그에게 시련을 던졌다. 그 고난을 넘지 못할 이봉주가 아니다.

이봉주는 “지금 내 위치는 인생 마라톤 42.195㎞ 코스에서 반환점을 막 지난 것 같다”면서 “앞으로 남은 길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구간”이라고 말했다. 이봉주는 내일 다시 뛰기 위해 오늘 열심히 걷고 있다.

“꿈꾸듯 꿈같은 길을 달린다. 함께 출발했지만 흐르는 물과 바람 길 위에 하나 둘 낙화가 되어 떠내려가고. 외로워도 좋다. 나는 길 위에서 멈춰 쉬지 않을 거다. 텅 빈 길 한 그루 나무로 남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릴 거다. 내게 부끄럽지 않은 나에게로 돌아가는 그 길.” 대한육상연맹에서 오래 일하다 은퇴한 서상택 시인이 지은 ‘마라톤’이라는 시다. 이봉주의 목소리 같다. 달려라 봉달이, 뛰어라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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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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