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지난 27일 열린 신년 간담회에서 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불허한 것을 언급하며 이제는 과도한 경쟁을 일삼던 조선업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현대중공업(329180)·대우조선해양(042660)·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3사가 붕어빵을 팔 듯 모든 부분에서 같은 구조를 갖고 경쟁하고 있다”며 “원가율이 90% 이상일 경우 RG를 발급해주지 않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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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은행이 선주에게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말한다. 통상 RG 발급이 선행돼야 선주는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하고, 조선사는 이 돈으로 배를 짓는다.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주는 불가능하다.
조선업계는 이동걸 회장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RG발급이 까다로워지면 조선사들은 수주를 위해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 선주사가 자국 정부의 막대한 금융 지원을 등에 업은 해외 조선사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국영 조선그룹 중국선박공업(CSSC) 산하의 금융 계열사가 계약 대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국 조선소에 컨테이너선이나 탱커선을 발주하는 해운사에 낮은 금리의 자금을 지원해준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15~2016년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2017년에 RG 발급 기준을 강화했다. 과거 1주일밖에 걸리지 않던 RG 발급 과정이 3개월 이상으로 길어졌고, STX조선해양 등 일부 조선사들은 RG 발급이 지연되면서 수주 취소 위기에 내몰렸다. 이듬해 정부는 RG 발급 기준을 다시 완화했다.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받는 국내 은행권 대신 해외 금융사로부터 RG를 받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2017년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국내 은행권 보증료율의 두 배가량인 1%의 수수료를 물면서 해외 보험사로부터 RG를 받은 바 있다. 선박 가격은 수천억~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1%라고 해도 상당한 금액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7일 온라인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무산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산업은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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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53.73 포인트를 기록했다. ‘조선업계 슈퍼사이클’ 막바지였던 2008년(190포인트) 대비 여전히 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지난 14년 동안 원자재, 기자재, 인건비 등 원가 상승을 고려하면 선가는 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선박 발주가 다시 줄면 조선사들은 고정비라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원가율이 높은 선박을 수주해야 한다”며 “후판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등 여건을 고려해 수주 가이드라인 강화를 미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선 3사가 2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만큼 RG 발급을 강화해도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반응도 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가 충분한 일감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격 협상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한국이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경쟁력이 앞서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RG 발급 기준을 강화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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